4. 어쩌다 보니 결혼
2020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있었다.
나는 20살에 서울로 올라와 12년간 기숙사, 원룸, 오피스텔에 살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조금씩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채 10평이 안 되는 공간이었는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작지만 내 한 몸 뉘이기에는 충분했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도, 언젠가 돈을 모아서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 살겠다는 꿈 정도는 갖고 있었는데 내 월급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집값을 보고 있노라면 요원해 보였다.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들은 죄다 10억을 향해 가고 있었고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오피스텔 전세금을 포함해 2억 남짓이었으니...
그녀와 나는 평소처럼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집값 얘기로 주제가 튀었다.
"오빠, 아파트 가격이 너무 빠르게 오르는 거 같아.
지금 아파트 사야 될 것 같아. 지금 안 사면 앞으로는 못 살지도 몰라."
"응? 갑자기? 우리 모은 돈도 얼마 없는데 아파트를 어떻게 사?"
우리는 아파트를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1시간을 넘게 얘기했다.
결혼 얘기보다, 아파트 사는 얘기를 먼저 하고 있다니...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랬다.
다음날, 나는 회사로 출근해 친한 선배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그 선배는 나랑 기수가 몇 년 차이 나지 않지만 부동산 투자로 꽤 많은 자산을 쌓은 사람이었다.
선배는 큰 고민 없이 명쾌하게 답을 해줬는데 그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 집을 사는 게 맞는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
그렇지만, 앞으로의 결혼생활이 편하려면 여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
그리고, 주말부터 우리는 우리의 아파트를 찾으러 다녔다.
내 회사는 광화문, 그녀의 회사는 수원이었기에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아파트값 방어를 위해 '신축 + 대단지 + 서울'의 조건을 정했다.
영끌을 한다 해도 우리의 예산이 넉넉지 않았기에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고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아파트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우리의 중간지점을 포기했다. 둘 다 힘든 것보다 한 명만 힘든 게 낫다며, 내 회사에서 가까운 아파트를 선택해 주었다.
아파트를 사기 위한 고민은 길었지만, 이후의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빠르게 계약서를 작성했고 온갖 대출을 끌어모으고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조금의 지원도 받았다.
그렇게 2020년 가을, 우리는 아파트를 얻었고 뒤이어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프로포즈도 상견례도 결혼식도 아직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다짜고짜 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