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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항해

고국으로 향하는 길_10

by NKDBer

"중국에서 찾아간 집엔 누가 살고 계시던 곳이었나요?"


아내의 조카가 살고 있는 집이었단다.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조카는 이튿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줬어. 처형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도착해서 아내는 만날 수 있었지만 아들은 찾을 수 없었단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정태는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니까, 나를 데리러 혼자서 다시 북한으로 갔다는 거야. 자기가 직접 건너와 보니 돈이 없으면 도저히 올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야.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남한에 있는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단다. 아버지가 지금 북한에서 국경을 넘어오고 있는데, 돈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는구나.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을 가지고 다시 국경으로 간 거였지. 나는 정치학교에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고, 살아서 갈 수 있으니 아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를 했지만,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거였지.


처형의 남편은 중국 사람이었는데, 형님과 함께 아들을 찾으러 갔단다. 다행히 정태가 도문에서 북한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발견했단다. 나를 찾으려고 국경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어. 조금만 늦었다면 아들을 영영 볼 수 없었을 거야. 그제야 가족 모두가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단다.


"다 함께 만나고 나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오실 수 있으셨나요?"


아니,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단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기도 했지. 정태가 큰아버지에게 받았던 돈이 당시 한국 돈으로 200만 원 정도였단다. 처형의 집에서 함께 지낸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형님이 나에게 찾아왔어. “네가 이 돈을 가지고 있다가 중국 공안한테 붙잡히면 다 줘야 하니까 나한테 맡기면 좋지 않은가? 그리고 너희 가족들이 한국에 가지 않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다시 돌아가라고 하는가?” 물어보니까 “지금 한국에 가봐야 당신들이 북한에 끌려간 사람들인데 뭐 좋다고 너희들을 도와주겠는가? 간첩으로 오해받아서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절대로 남한에 가지 말고 다시 북한에 가서 생활하라.”라며 계속 북한에 보내려고 하더구나. 자기한테 일단 돈을 맡기고 국경에 와서 전화나 편지만 하면 자기가 언제든지 돈을 가져다주겠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그래서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형님은 그날 저녁에 우리 가족을 중국 공안에 고발했단다. 갑자기 북한으로 강제송환이 될 위기였지. 북한으로 다시 붙잡혀 가게 되면 죽을 것이 뻔한데, 친척이면서 어떻게 신고를 할 수 있냐는 말이야.


붙잡혀 가서 조사를 받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과장이 한 명 있었어. 과장에게 “나는 고향이 대한민국인데, 30년 전 고기잡이 하다가 북한 군인들이 총을 대고 가자고 해서 납치되었습니다. 죽더라도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 죽겠으니까, 제발 나를 한 번만 살려주시오.”라고 애원했어. 과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중국에 있는 동안은 절대 도둑질도 하지 말고 소란 피우지 말라. 소란 피우면 봐줄 수도 없으니 조용히 있다가 가면 조사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바로 풀려나올 수 있었단다.


중국체포.png


"풀려나서는 어디로 가셨어요?"


처형 가족과 멀리 떨어진 상지시 한 시골 마을에 작은 방을 얻었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한국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문적 박대당하기 일쑤였지. 영사관 직원은 나에게 “한국에 세금 낸 적이라도 있느냐, 왜 자꾸 국가에 부담을 주는 거냐?” 라며 홀대할 때 정말 서럽고 막막했단다. 목숨을 걸고 북한만 벗어나면 한국에 들어갈 줄 알았지만, 나오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어.


그렇게 중국에서 2년의 시간이 흘렀단다. 아버지가 살던 마을에 오두막집으로 된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가 있었어. 외벽은 유리창으로 둘러져있고, 양철로 둘러싼 지붕 위에 십자가가 있었지. 입구에는 한글로 교회 이름이 쓰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종종 예배를 드리러 갔었어. 어느 날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교회를 찾아왔단다. 중국 시골 마을에 한글 글씨가 있으니 신기해서 찾아왔다고 하더구나. 그 사람은 자기를 작가라고 소개했는데, 서로 고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 나는 대한민국에 가고 싶지만 몇 년 동안 길이 막혀서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했단다. 북한에 납치되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은 그분은 한국에 돌아가서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는 방도를 꼭 찾아보겠다고 했단다.


그 사람이 돌아간 지 한 달 뒤, 유명 언론사 취재팀과 납북자 가족대표가 직접 중국까지 찾아왔어. 취재팀은 공식적인 방법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정원 직원 4명이 찾아왔단다. 나에게 여권을 하나 주면서 대한민국까지 잘 안내해 주겠다고 했어. 직원들은 입국 전에 여러 가지 준비를 시켜줬는데, 가장 먼저 했던 건 머리를 염색하는 거였단다. 국정원에서 준 여권에는 내 나이가 70살로 되어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60살 밖에 안 됐으니 위장을 해야 했지. 흰색으로 염색을 하는데, 물이 잘 안 드니까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다시 머리를 감고 한 열 번은 반복한 것 같아.


모든 준비를 마친 뒤, 국정원 직원들은 나를 관광객으로 위장해서 베이징 일대를 데리고 다녔단다. 다음으로는 상하이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거기서 비행기 한 번만 타면 대한민국에 도착하는 거였지. 위조된 여권이었기 때문에 내가 만약 공항에서 잡히더라도, 절대로 북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더구나. 우리 아들은 여권 나이가 마흔 살로 되어있었지만, 다행히 보안 직원은 나와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도장을 찍어줬어. 그렇게 상하이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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