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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항해

고국 귀환_11

by NKDBer

"대한민국에 도착하셨을 때는 몇 년도였나요?"


2000년 7월 23일,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단다. 30년 만에 살아서 돌아온 것이 천운이었지.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입을 맞췄단다. 첫날 도착해서는 국정원 안가에서 하룻밤을 묵었어. 집이 널찍하고, 침대도 멋있고, 모든 시설들이 호텔보다 더 좋게 해 놨더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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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 돼서는 우리 가족은 대성공사라는 곳으로 보내졌어. 그곳에서는 내가 간첩활동을 하기 위해 넘어온 위장 탈북자인지 아닌지 조사를 하더란 말이야. 대성공사 사람들은 국정원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가족들을 범죄자 다루듯이 대했단다. 정태가 대한민국에 잘 도착해서 기쁘니까 싱글싱글 웃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대성공사 직원 한 명이 “야, 이 새끼야, 너 뭐 때문에 사람 비웃어?” 라며 다가오더구나. 그래서 정태가 “나 비웃지 않았는데요?”라고 했는데 갑자기 경찰이 우리 아들을 막 때리는 거야. 내가 “당신 내 아들 왜 때려?” 하니까 “이 아바이가 어디다 대고?” 라며 나도 때리려고 하기에 나는 “어디가 뭐야? 어디서 이 따위 새끼가” 하면서 막 덤비려 했단 말이야. 옆에서 사람들이 말려서 그만두었지.


거기서 3개월 동안 힘겨운 조사를 끝내고, 아내와 아들은 먼저 하나원이라는 곳으로 갔단다. 하나원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3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교육을 해주는 곳이었어. 아버지는 원래 대한민국 국민이었기 때문에 하나원 입소 대상이 아니었단다. 그런데 대성공사 직원 중 한 사람이 아직 내가 살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집을 구할 동안 가족들과 함께 하나원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단다. 그래서 나도 가족들보다 열흘 늦겠지만 하나원에 입소할 수 있었어.


나는 하나원에 있는 동안 30년 만에 헤어졌던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단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옛날 얼굴이 그대로였어. 서로 안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지. 그런데 우리 형은 나를 보고도 영 좋아하지 않았어. 알고 보니 내가 북한에 납치되어 있는 동안 간첩 가족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갖은 수모를 당했더구나. 너의 작은 아버지는 무역선 기관장이었는데, 러시아나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한국 정부에서 육지에는 절대 내리지 못하게 했다는 거야. 북한에 있는 나랑 연락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매번 의심의 대상이었지. 그래서 육지에 발 한번 못 내리고 배에만 갇혀서 나오지 못한 적이 많았단다. 너의 큰아버지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 큰아버지는 기중기 운전기사로 일을 했었는데, 중동 파견 근무를 열 번 넘게 신청해도 번번이 거절당했다는구나.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애초에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던 거였지. 중동 지역에서 4-5년만 일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그 길이 번번이 가로막혔던 거였어.


정말 가슴이 아픈 건, 형제들뿐만 아니라 조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거야. 대학에 입학할 때 많은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수님 동생의 호적에 아이들을 올려서 겨우 대학을 갔다는구나. 형제지간에 살아서 다시 만난 걸 마음껏 기뻐하지 못할 정도로 서로가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던 거였지.


하나원에서 3개월의 교육이 끝난 후에, 가족이 함께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생활을 시작했단다. 몇십 년 만에 누리는 자유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정태는 그렇게 바라던 대학교에 입학해서 전자공학 공부를 시작했단다. 처음 1년 동안은 첫 남한 생활이다 보니 적응시간이 필요했어. 다른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했지만, 졸업할 때는 모두 A학점을 받았다며 자랑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구나. 졸업한 뒤에는 각국의 나라들을 다니며 많은 경험들을 쌓고, 지금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아내와 사랑스러운 손주들이랑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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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 살아 돌아왔지만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단다. 과연 몇이나 살아있을지…. 대한민국에 돌아와 보니, 타국에서 손가락질받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조국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지 마음이 뭉클해지더구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살리자면 다 함께 나라를 생각하고, 서로를 끌어안고 배려하면서 간다면,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의 조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란다.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항해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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