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한 치의 비스 듬도 없이 사랑하는 엄마가 부드러운 손끝으로 아주 곱게 땋아 놓은 이쁜 딸아이의 양 갈래머리 모양 마냥 나란히 놓여 있는 이쁘고 귀여운 작은 신발, 그리고 늘 외롭게 불이 꺼져 있는 텅 빈 지하방이었는데 갑자기 지금 아주 밝은 보름달 불빛이 창가에 빼꼼히 걸쳐진 것도 아닌 것이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깊게 눈을 감았다, 또 보이지 않는 다시 깜깜한 밤하늘을 깊숙이 쳐다보며 볼을 한 번 꼬집어 보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막고 "아야 아프네" 하는 소리가 났다. 제발 꿈이 아니길 하는 바람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행복한 기분으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아직은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로 걸음을 돌려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회전목마 돌듯이 맴돌고 있었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손 잡이를 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혼자만의 결론으로 그냥 발걸음을 뒤로하고 문자메시지 하나를 남기기로 했다 "잘 왔어 너무 잘 왔어" 하고 근처 편의점 간이의자에 앉아 안주 없이 맥주 캔 하나를 시원하게 땄는데 젠장 꼭지가 불량인지 내가 너무 흥분해서 인지 꼭지만 뜯어질 뿐 맥주의 형태는 그대로이며 한 모금 거품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불량스러운 아이라고 바꿔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에서 숙제 아닌 숙제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집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는 생각들이 떠나질 않았다. 1시간을 그렇게 혼자 넋을 잃고 있을 때 문자메시지가 왔다.
"너를 볼 수 있는 기대감 설렘 떨림 그리고 긴장감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을 한다면 못 볼 거 같아서 혹시나 하고 왔는데 지금은 그냥 이대로의 그리움이 맞는 거 같다. 방 안에 가득 찬 너의 냄새 너의 향기 그리고 너의 흔적들이 눈물 나도록 만족하고 있어 머뭇하다가 다시 돌아간 너의 선택이 옳은 거 같아 다시 올게. 내가 얼른 가야 너도 편히 쉴 수 있겠지. 그리고 너무 고마워" 긴 장문의 문자메시지에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왔을 때 내게 웃음과 설렘을 줬던 그 이쁜 신발은 마치 연필로 스케치를 완성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마구 지워버린 화가 연습생처럼 귀엽게 놓여 있던 이쁜 신발이 없어졌고 환하게 밝게 빛났던 지하방의 불빛도 예전 그대로 꺼져 있는 게 꿈을 꾸고 있는 듯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다시 예전 일상으로 돌아온 거 같다. 불 끄진 외로운 지하 창밖으로 보이는 달빛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유일한 친구였는데 조금 전의 과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거 같은 환상이었다. 잠시 머물러 간 흔적이라고는 방 안 눅눅한 노총각 냄새가 어느새 사라지고 달콤한 향수 냄새로 코 끝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선생님과의 저녁 약속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꿈을 꾸고 있는 듯하지만 꿈이 아닌 그리움으로 쌓아 그 사람과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고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내 몸은 자연스레 금방 새벽을 알렸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나는 평상시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했고 새벽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선생님도 반장님들도 피곤한 내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나도 이제 이 새벽시간이 참 좋다 그리고 선생님을 보자마자 "선생님 선생님 어제 그 사람이 왔다 갔는데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 다음을 기약했다며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며" 기쁜 마음을 호들갑을 떨었다 "어쩐지 내가 아침에 평상시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게 왠지 기쁜 일이 일어날 거 같더니 너에게 이 기쁜 소식이 있었구나 나도 축하해 꼭 축복받는 일만 생기자 알았지 정말 응원할게" 두렵고 걱정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한 결 편해지면서 새벽일을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갑자기 도망치는 고양이의 놀라움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것조차 마냥 즐거웠다. 어젯밤 술에 취해 엄청난 양의 토를 치우는 것도 즐거웠다. 반장님들도 변하고 있는 내 삶을 축복해 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청소 일이 마무리될 즘 가로등 밑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청년을 깨워 정신을 차리게 한 후 반장님께 말씀드리고 조금 이른 퇴근으로 이 청년을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서 컵라면을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채운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리숙한 내 모습을 보는 듯이 한 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또 다른 생각으로는 얼마나 힘든 청춘인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오늘은 허기진 배를 컵라면 아닌 24시간 하는 뜨끈한 콩나물국밥집에서 날달걀을 넣은 시원한 콩나물국밥에 잘 익은 깍두기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유난히 콩나물국밥은 더 시원하게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사실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시고 싶었지만 이 욕심은 뒤로 미루고 초 가을의 하늘을 보며 자연스레 나오는 콧노래 소리에 걷다 보니 착한 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주유소에 도착했고 내가 없는 사이 그 향수의 그녀는 두 번이나 짧은 주유를 하고 갔다고 한다. 낯선 향수에 잠시 놀라고 언제 다시 올까 손꼽아 기다렸지만 오늘 두 번이나 왔다 갔다면 곧 다시 올 거라 생각이 들면서 동생들이랑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바쁘게 움직이며 주유하러 온 차들을 기분 좋게 맞이한다.
"형 기분이 많이 좋아 보여요 오늘따라 얼굴이 너무 밝은데요" 티가 나나 보다. 주유구에 주유를 하면서 순간 선생님의 첫째가 생각났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가족들에게 큰 죄책감이라는 큰 짐을 주고 그 나쁜 남자를 선택했을까~선생님의 걱정을 나눠드리고 싶었다. 제발 선생님의 텅 비어 있는 마음 한편을 채워 드리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아저씨 주유 다 끝났는데요"라는 젊은 아가씨의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라고 크게 인사하고 멍 한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자동차들이 모두 다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 한 눈 팔 수 있는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새 바다의 깊은 푸른빛을 자랑하듯 가을의 햇살과 푸르름이 참 좋다. 행복한 시간들이 기다림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