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서도 불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나는 도서관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저 눈물이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다섯 해 동안 매일 열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했는데, 목표는 여전히 저 멀리에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게 더는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첫 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는 '다음에는 꼭 붙을 거야'라는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두 번째 불합격 때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세 번째, 네 번째... 이 길이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공부하는 동안 종종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작은 위안이었다. 봄이 오면 그 여린 새싹들이 돋아나는 모습이, 가을이 오면 나뭇잎이 붉게 물들었다가 떨어지는 모습이 신기했다. 세상은 내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제 흐름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아깝게 됐네요."
누군가의 위로였다. 그러나 '아깝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내 점수는 합격선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합격자 발표가 난 날, 친구 중에 합격한 사람이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이해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성공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그런 위로의 말들이 실패의 고통을 덜어주진 않았다. 실패가 가르쳐준 것은 오히려 냉혹한 현실이었다. 모든 사람이 노력한 만큼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때로는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다섯 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그날따라 하늘이 유독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그저 무표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내 실패에 관심이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실패란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것을. 내가 실패라고 규정했을 뿐, 그것은 그저 내 삶의 한 장면에 불과했다.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인내를 배웠고, 고독과 마주하는 법을 배웠으며, 나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밀어내는 법도 배웠다.
고시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처음엔 가느다란 묘목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라 있었다. 나무는 도전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자신의 속도로 자랄 뿐이다. 그것이 나무의 방식이고, 나무의 성공이다.
실패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야 할 다른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른 가능성을 향해 문을 여는 시작.
다섯 해 동안의 고시생활을 마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합격증이 아니라, 그 합격증이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인정과 안정감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길을 잃어야만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실패라 여겼던 그 모든 시간이 결국은 나를 어딘가로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