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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結末

by 서율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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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영화라면,
엔딩은 해피엔딩일까?


암전이 시작되면 모두가 숨죽이고 영화의 시작을 기다린다. 거대한 빛은 어느새 영화라는 가상 속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난 그곳에 스며들지 않았다. 경사가 낮은 계단을 오르며 유유히 상영관 안을 빠져나왔다.
"영화 안 보게?"
언제 나온 건지 극장 밖으로 향하던 도중 너와 마주쳤다. 분명히 푹 빠져 영화를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금방 들어갈 거야, 먼저 가 있어."
넌 나를 노려보는 듯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미 알아채버린 것처럼. 방금 한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나는 사람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올 때까지도 상영관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불길함을 느낀 내가 서둘러 너를 안심시키려 할 때,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람 쐬러 갈 거면, 같이 가."
나도 모르게 표정에선 당혹감이 묻어난 듯 보였다. 너는 불편하냐며 물었고, 난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의구심을 제치고 내가 가장 먼저 건넨 질문은 "영화 안 볼 거야?"였다.
"너랑 같이 보려고."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걸 넘어서 나랑 영화를 보고 싶은 진심인 건지. 난 하는 수없이 너와 그 답답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넌 내게 말괄량이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내 영화에 집중했다. 어둠 속에 적막뿐이고, 그 사이를 영화의 오디오만이 메우는 숨 막히는 공간이 너무 싫었다.
상영 중인 영화의 결말은 어렴풋이 예상이 갔다. 주인공은 분명히 해피엔딩을 맞을 것이다. 지금 하려던 같잖은 도전은 모두 성공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 인생이 영화라면, 고작 영화일 뿐이라면 엔딩은 해피엔딩일까?
부진한 흐름과 기고한 삶의 결말은 어떨까?

어쩌면 이미 새드엔딩이 정해진 이야기처럼 나는 주어진 대본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남의 이야기에 감히 끼어든 악인처럼, 모두가 내 결말이 새드엔딩이길 바라면 난 그에 따르는 꼭두각시일 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난 영화 속 지나가는 누군가로 다른 이의 해피엔딩을 기다리는, 홀로 잊히는 사람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난 뻔한 새드엔딩을 미루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생활에 희망을 걸어보고, 평생 나아지지 않을 나를 데리고 산다는 거. 그저 엔딩 크레딧을 기다리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뿐일까.

그럼에도 인생이 영화 한 편이라면, 난 기쁠 것 같았다.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에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는 이가 있다는 거니까. 어찌 됐든 새드엔딩을 맞을 이야기를 해피엔딩까지 이끌어내려는 이가 있다는 거니까.
무엇보다 결말을 고독으로 마무리 짓진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이야기는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영화의 결말을 떠올리다 보니 암전이 끝났다. 한순간에 상영관 안이 밝아지며, 나를 향한 너의 미소가 또렷해졌다. 잠깐 동안, 아주 잠깐 동안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나리오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충돌의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할 만하니까.
비록 때로는 결말에 기뻐하지 못할 새드 엔딩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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