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는 최근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내년에 3명이나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다. 은호도 요즘 결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우현이와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은호는 가족센터 행사로 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있어서 우현에게 전화를 했다.
“우현아 우리 센터에서 연인들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있는데 들어볼래? 재밌을 것 같아.”
“난... 그런 건 좀 부담스러워. 그리고 지금 준비하는 게 있어서 바쁘기도 하고.”
은호는 우현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은호는 우현이와 한강 고수부지에서 보기로 했다.
“내가 갑자기 그 교육 듣자고 해서 당황했지? 내가 하는 일이다 보니 큰 의미를 두고 말한 건 아니야.”
“난 결혼은 35살 넘어서하고 싶어. 준비도 안 됐고. 엄마, 아빠한테도 물어봐야 하고.”
“엄마, 아빠한테? 결혼은 우리가 하는 거잖아.”
“그건 그런데... 나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지 않아. 난 지금 하고 싶은 게 많아. 내가 예전에 말했잖아.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은호가 말하려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 우현이와 교육 강의를 들으면서 재밌게 말하고 다과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우현이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우현은 결혼이라는 단어를 불편해했다.
은호는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35살 이후에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우현의 말이 떠올랐다.
최근에 우현은 바쁜 일들이 많았다. 주말에도 회사에서 업무 지시가 메시지로 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현은
“잠깐만 지금 갑자기 볼 게 있어서.”
라며 핸드폰을 봤다. 우현이 바쁘다 보니 오늘은 우현의 집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곳은 넓고 해가 잘 들었다. 잠깐 은호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우현은 소파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30분이 지났지만 우현은 계속 잠을 잤다.
은호는 우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은호는 오늘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며 우현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현이 눈을 떴다.
“미안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갈래? 내가 오늘 괜히 보자고 했나 봐. 집에 가자.”
“아니야. 이제 왔는데. 커피는 마시고 가야지.”
은호는 오늘따라 우현과 있는 것이 불편했다. 우현은 뭔가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가서 좀 자야겠다. 은호야 연락할게.”
은호는 우현과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우현이 바빠서 한 달에 두 번도 보기가 힘들었다. 전화도 저녁에만 잠깐 했다.
토요일에 가족센터의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은호도 행사에 참여하느라 바빴다. 은호는 아이들이 스티커를 붙이면 치약, 칫솔을 주는 부스에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아이와 부모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많았는데 줄을 서지 않아서 은호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그런 아이들 옆에 있다 보니 부스 앞이 혼란스러웠다.
“줄 서 주세요.”
은호가 큰 소리로 말했지만 치약, 칫솔을 받으려는 아이들이 은호 앞에 서있었다. 은호는 누가 먼저 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때 한 남자아이의 엄마가 화를 내며 은호에게 말했다.
“저희가 먼저 왔어요.”
“제가 못 봤어요. 죄송해요.”
선물을 건네자 아이의 부모는 자리를 떠났다. 은호는 행사 부스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은호는 피곤함 때문인지 기운이 없었다. 그때 우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호야 너 혹시 친구 중에 소개팅해줄 친구 있어? 회사에서 선임들이 좀 해달라고 해서.”
“내가 지금 바빠서 이따 말해줘도 될까? 내가 오늘 행사하러 왔어.”
“아, 그래? 그럼 이따 전화하자.”
“내가 지금 바빠서 끝나고 연락할게.”
행사가 끝나고 은호는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팠다. 은호는 행사 물품들을 정리하느라 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했다. 은호가 막내여서 힘쓰는 일은 은호가 맡아서 했다. 은호는 비품창고에 물품을 옮기며 잠깐 쉰다고 바닥에 앉았다. 그때 우현에게 전화가 왔다.
“은호야 내가 말한 건 생각해 봤어? 자꾸 재촉해서.”
“우현아 나 오늘 좀 힘들었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 힘들었구나... 근데 나 아까 말한 거 먼저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아직 일을 못 끝냈어. 미안. 내가 끝나고 연락할게.”
은호는 서운한 감정을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