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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

만약 다른 선택이었다면 11

by 시절청춘

한때 불미스러운 사건에 휩쓸리면서, 나는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처음 일주일 동안 밥 한 숟갈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고, 잠도 들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깡소주를 마시는 일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선배들이 찾아와 억지로 밥을 먹일 정도였다.



그 무렵 아내는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저, “요즘 일이 많이 힘든가 보다.” 하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 다음날, 병원에 간 나를 보더니 아내가 단박에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있죠?”


“아니야. 아무 일 없어.”


“말 안 할 거예요? 그럼 나 지금 퇴원해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나… 신고당해서 군사경찰 조사받고 왔어.”


“네?”


“조사받는데, 나를 완전 범죄자 취급하더라. 미치겠어.”


“변호사는요?”


“무슨 변호사야.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아내는 단호했다.


“그럼 변호사부터 구해요. 내가 알아볼게요.”



그렇게 아는 친척의 소개로 변호사를 만나, 다음 조사에는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


신기하게도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나를 범죄자처럼 대하던 수사관들이, 변호사가 동석하자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질문은 똑같았지만, 나는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했다.


증거까지 제출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조사 때였다.


수사관이 “합의”에 대해 흘리듯 꺼냈다.


“합의하면 군 생활은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로 넘어가서 불리해질 수 있어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변호사조차 “합의가 나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했다.


“합의를 하면 혐의를 인정하는 거잖아. 그럼 그냥 퇴직금이나 받고 끝내는 거지.”


“그게 오빠가 원하는 삶이에요?”


“그래도 퇴직금은 받을 수 있잖아.”


“이렇게 불명예스럽게요? 죄도 없이 억울하게?
오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데, 절대 안 돼요.”


“만약 끝까지 가서 지면 퇴직금도 날릴 수 있어.”


“괜찮아요. 내가 벌면 되죠. 안 되면 시골 내려가 살면 되잖아요. 끝까지 가요.”



그날 아내의 단호한 말에 나는 결심했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그 후로 2년.


길고 지독한 싸움 끝에 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다시 군에서 묵묵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그때 합의를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억울하지만 범죄자 낙인을 짊어진 채, 세상과 등을 진 채로 살았을 것이다.


그때의 충격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컸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많이 나아졌지만, 불안과 공황의 그림자가 여전히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 시절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나를 붙잡아준 아내, 믿어준 동료들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따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아직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억울하더라도, 진실이라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남은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



진실은 시련을 거친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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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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