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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어느 80대 노부부 이야기

by 은도

故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곡을 좋아한다. 나는 십여 년 전, 이 곡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지난한 세월을 함께 살아내고 이제 이별을 앞둔 노부부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노래를 들으면 머리가 하얗게 센 어느 노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빛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길 꿈꾸며 한동안 이 곡을 반복해서 듣곤 했다.

곡이 발매된 1990년에는 ‘60대 노부부’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웠겠지만 2025년 현재, 그 표현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으로 따지면 ‘어느 80대 노부부 이야기’쯤 되려나.


[010] 큰엉해안경승지.jpg 제주 남원리


더위가 밤낮으로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말, 나는 4개월 만에 육지에 다녀왔다.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위해서였다. 4년 전, 할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장을 8 cm 가량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았고, 4년 동안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기어이 문제가 생겼다. 할아버지가 복통을 호소해서 응급실에 모시고 가 검사를 받았는데, 장이 꼬여 있고 뱃속에 가스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양배추, 고구마 등 채소를 갈아 만든 주스를 장기간 섭취한 데다, 운동을 잘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진단 후 할아버지는 바로 입원을 했다. 코와 항문에 관을 넣어 뱃속에 가득 찬 가스를 인위적으로 빼내며 경과를 지켜보아야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다녀온 다음 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첫 손주인 나를 첫정이라며 유독 예뻐했다. 그런 손주를 보니 할머니는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내게 당신의 심정을 쏟아내었다.


할아버지가 입원한 후, 할머니는 집에 동그마니 홀로 남았다. 끼니를 챙길 사람이 없으니 밥에 물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으며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소파의 빈자리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거기 앉아 있을 것만 같은데 소파는 텅 비어있었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할아버지가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을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병간호를 하느라 고생하는데, 당신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할머니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둠이 드리운 텅 빈 집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현관 불을 켜놓고 TV를 틀어놓은 채, 거실에 누워서 졸다가 깨고, 졸다가 깼다.


[010] 신도리 유채꽃.jpg 제주 신도리


사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평소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다. 걸음이 빠른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를 한참 앞서 걸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빨리 와”,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다시 뒤돌아 휘적휘적 걸어가곤 했다. 할머니의 “같이 가”라는 외침은 할아버지에게 닿지 않는 듯했다. 할머니는 늘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집안일을 했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소파에 앉아 할머니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무심했고, 할머니는 늘 할아버지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줄줄 읊으며 징글징글하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이런 모습을 익히 봐 온 터라, 내 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크게 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60년 세월을 함께 살아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할아버지는 내게 할머니가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있을 거라며 맛있는 걸 사 드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돼지갈비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당신은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며칠째 식사는커녕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할머니는 음식 얘기만 나오면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할머니에게 빵을 좋아하시는지 물으면 할아버지가 좋아하신다고 했고, 음식이 입에 맞는지 물으면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꼭 프림과 설탕을 넣어 인스턴트 커피를 타 먹었는데, 할머니는 그 커피를 마시면서도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침 먹고 나면 네 할아버지랑 꼭 이걸 타 먹어. 습관이 돼서 안 먹으면 서운해. 네 할아버지 지금 이거 잡숫고 싶겠네.”


며칠 후, 할아버지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 날짜가 잡혔다. 그 길로 할머니는 37도의 무더위를 뚫고 정육점에 가 소고기 한 근을 사 와서 장조림을 만들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퇴원하시면 챙겨드릴 게 많아 할머니가 힘드실 텐데, 그래도 할아버지가 퇴원하시는 게 좋으세요?” 할머니는 대답했다. “그럼. 힘들어도 할아버지가 있는 게 좋지.”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무지 사랑하시네!” 할머니는 그건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랑 같이 산 게 60년이야, 60년.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지. 있으면 뵈기 싫은데, 없으면 또 허전해. 나는 네 할아버지 가고 나면 나 혼자서는 못 살 것 같아. 진짜 못 살 것 같아.”


[010] 낙조.jpg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60년 세월을 함께 보냈다. 가난 속에서도 삼 남매를 낳아 길렀다. 큰 딸인 내 엄마를 시집보내며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막내아들이 경찰 시험을 준비할 땐 뜬 눈으로 밤을 지내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고, 손주가 태어났을 땐 같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인생이 흘러 황혼에 기우는 동안, 이 세상에서 둘만 아는 일들과 둘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 쌓였을 것이다. 60년의 두께만큼, 켜켜이.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언어에 담을 수 없는 의미가 된 것 같다. 그게 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나는 늘 누군가를 만나 긴 세월을 묵묵히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미운 정이 쌓이는 만큼 고운 정을 쌓고, 힘든 일이 쌓이는 만큼 둘만의 역사를 쌓으며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내게 맞지 않는 사람은 빠르게 떠나보내라고 가르쳤다. 힘든 인연은 인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인연은 찾는 게 아니라 견디며 만드는 게 아닐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견디고 인내하는 만큼 ‘사랑’이라는 언어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발견했을 때 나란히 손을 잡고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 기억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따로였다. 앞서 걸어가는 할아버지, 뒤쫓아 가는 할머니. 하지만 그 마음만은 늘 ‘나란히’였던 것 같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 그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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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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