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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출근은 지각

정시 운동도 지각

by 스위스 아낙 Apr 04. 2025

수요일 낮 12시 요가 수업으로 바꿨다. 점심시간을 틈타 후딱 진행하는 요가는 의욕 넘치는 직장인들로 항상 붐비지만, 예약제로 운영되는 수업이라 자리싸움은 예상하지 못했다. 11시 45분쯤 주차장에 도착한다. 아뿔싸, 자리가 없다. 돌고 돌다가 한참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뛰어갔다. 11시 57분,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한 여자가 되돌아 나오면서 하는 말. "인원 다 차서 소도구가 없대." 그녀도 예약을 한 모양이다. 데스크로 가 물어보니 예약하지 않고 그냥 듣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혼자는 민망할 것 같으니 그녀에게 물었다. 같이 수업 들어가서 예약자 확인 부탁을 해볼 테냐고. 


"우리가 늦은 걸 누굴 탓하겠어."

"응? 우리 늦지는 않았잖아."

"스위스에서 3분 전에 도착하는 건 늦은 거야."


내 돈 내고 듣는 수업인데, 수업 3분 전에 도착했다고 쫓겨나다니? 그것도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그럼 예약은 왜 받는담?

 

2025년 3월 31일, 루체른 호숫가2025년 3월 31일, 루체른 호숫가


우리는 보통 아침 8시쯤 집을 나선다. 남편의 회사는 10분 거리에 있지만, 8시가 넘어가면 그의 발걸음이 조급하다. 딱 한번 8시 45분쯤 회사에 도착한 날이 있었는데, 아직도 지각한 자신에게 실망하던 표정이 선하다. 직급이 오를수록 아침 일찍 잡히는 회의들이 많아져, 요즘은 7시에 출근하는 일도 잦다. 이쯤 되면 8시 출근 5시 퇴근인가, 유연근무제인가 싶다. 아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 맞다. 그럼 초과 근무 아니냐고? 맞다. 초과수당도 안 주면서 9시 00분 출근은 지각 취급한다. 


유럽의 악명 높은 대중교통과 달리, 스위스에서는 기차의 지연이나 취소가 드물다. 종종 지연이나 취소가 있는 경우는 대개 폭설로 길이 막혔거나,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행/발 열차들이다. 물론 언제나 정시 출발, 도착인 KTX와는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시성이 좋은 편이고, 1분이라도 지연이 있을 경우에는 이용객들에게 비교적 빨리 안내하는 편이다. 그래서 스위스인들의 기차 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은 어마어마한데, 솔직히 세계최고 지하철 시스템과 코레일을 보유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금 우습긴 하다. 



자그마치 299 프랑 (한화 약 48만 원)에 판매 중인 25cm 벽시계. 스위스 철도 SBB에서 판매 중이다. 자그마치 299 프랑 (한화 약 48만 원)에 판매 중인 25cm 벽시계. 스위스 철도 SBB에서 판매 중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단점을 생각한다. 몇 년 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대행사'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드라마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저 표현만큼은 잊히지가 않는다. 아직도 종종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곤 해서, 자주 스스로 되뇌곤 한다. 스위스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면 최소 5분 전 도착은 필수다. 높은 확률로 스위스 사람들은 약속시간 15분 전에 도착해 있을 테다. 내가 5분 전에 가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이미 10분 기다린 셈이니, 스위스 사람들과의 약속에 10분 이상 늦으면 많이 미안해진다. 


스위스 사람들의 엄격한 시간 관리는 단순히 생활 습관이 아니라 예의와 신뢰의 표현이다. 금융, 보험업과 시계 산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정확성과 신뢰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일찍 나선다. 정시성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늦은 업로드를 하는 스스로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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