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스위스는 뭐 먹고 삽니까.
앞서 GPT가 써 내려간 9가지의 이유 중에 산업 기반, 국제 무역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부를 좀 하긴 했어도, 나는 사회 정치학자가 아니다.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며 현학적인 글을 쓸 능력도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봤다고, 자랑처럼 펼쳐 놓을 뿐이다. 그러니 부족해도 너그러이 눈 감아 주시길.
많은 이들이 스위스에 관광업과 초콜릿, 시계 밖에 없는 줄 안다. 사실 그 셋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들이긴 한다. 코로나 이후로 한때 우리나라에 명품 열풍이 불었다. 구찌, 보테가베네타, 입생로랑을 가진 Kering, 루이비통, 불가리, 디올에 이어 티파니까지 품은 LVMH, 그리고 Richemont. 전 세계 명품의 90% 이상은 이 세 그룹이 다 가지고 있을 테다. 품목 당 단가가 가장 높은 브랜드들을 가진 리치몬드가 스위스 회사다. 대표적으로 까르티에, 반클리프아펠, 피아제. 우리가 결혼반지와 예물 시계를 사면 그 돈이 다 스위스로 온다. 다음으로 초콜릿, 학교에서 우유를 배급받던 시절이 있었다. 네스퀵 가져오는 친구는 그날 내 단짝이다. 네스퀵과 함께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 그 시절 어른들이 잘 마시던 네스카페. 이쯤 되니 요즘 집집마다 있다는 네스프레소도 떠오른다. 스위스 소비재 기업 네슬레. 이 외에도 치과나 안과에 가면 있는 기계들은 대부분 스위스 기계다. 설악산 케이블카도, 안경 쓰는 이들은 알 법한 알콘도 스위스 회사다. 보험, 금융, 제약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강한 수출 경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면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값싼 카카오를 수입해 맛있게 초콜릿을 만든 뒤 세상 곳곳에 판매한다. 커피나무 한 그루 안 자라는 나라에서 전 세계가 마시는 캡슐 커피를 만들어 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21세기에 연 30조 가치의 시계를 수출한다. 자원 없는 스위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기술력과 부가가치 창출이다. 매사 꼬아 보는 경향이 있어서, 솔직히 스위스가 카카오를 선점하고,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부티크라며 수억 원에 시계를 팔 수 있는 건, 모두 세계 대전의 영향을 안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배울 점을 찾아보면 스위스 사람들은 퀄리티, 상품의 질에 있어서는 진심이다. 괜히 스위스 퀄리티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닐 터. 스위스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증명되어 온 것을 좋아한다. 높은 구매력과 함께 질 좋은 상품을 높은 가격을 주고 살 준비가 되어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고사하고 메이드 인 EU도 의심부터 하는 소비자들이다.
연구 분야에 있어서 스위스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스위스에 있다. 대표적인 제약사 로쉬(Roche)와 노바티스(Novartis)는 매출의 약 20%를 연구개발에 다시 투자한다. 취리히 공과 대학 (ETH)의 한 해 연구 예산은 1조가 훌쩍 넘는다. 서울대학교의 한 해 연구 예산은 그 반절이 채 안된다. 물가 수준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 연구 예산으로만, 한 국가가 얼마나 연구 분야에 투자하는가를 논할 수는 없다. 안다. 하지만 최근 몇 해, 연구비 삭감으로 국내의 대학들과 다수의 연구기관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하면,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다. 단편적으로 연구자들에 대한 처우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스위스 연구자들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투자, 연구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명문대 출신 내 친구들은 석사, 박사 후에 빠짐없이 모두 삼성전자 연구원이 됐다.
다들 회사 잘 다닌다. 연구원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회사의 혁신에 기여한다.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엉덩이 무겁고 머리 좋은 인재들이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원 없이 하게 할 수 있다면, 제2, 3의 삼성전자가 나올 텐데. 유학을 간 친구들은 박사 후에도 해외에 있는 편이다. 수출 강국 대한민국은 어느새 인재 수출까지 하는 중이다. 물론 제3 국가로부터 노동력 수입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지타산이 안 맞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뒤에, 떠난 인재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연구 환경을 갖춰 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떠나버린 우리 인재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연구하러 오고 싶은 나라가 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