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아닙니다. 총리도 없어요.
스위스가 잘 살게 된 이유를 어디서부터 써 내려갈까, 한참 고민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정보가 주르륵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니 굳이 내 짧은 지식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결국 Chat GPT한테 물었다. '스위스가 잘 살게 된 이유 알려줘.'
GPT는 9가지의 이유를 나열했다. 단연, 그중 첫 번째가 '중립성과 정치적 안정'이다. 국민배우 손예진과 현빈을 진짜 부부로 만든 '사랑의 불시착'. 남한 여자와 북한 남자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는 중립국 스위스에서 사랑을 이루는 결말로 끝난다. 덕분에 현지인들도 잘 모르던 작은 동네 이젤트발드는 늘 관광객으로 붐빈다. 북한의 김정은도 스위스에서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IOC, WHO, WTO, UN 등 다수의 국제기구들도 스위스에 위치해 있다. 유럽 한복판에 자리하면서 유럽 연합은 아니다. 영국처럼 탈퇴를 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가입도 안 했다. 주변국들의 부침에도 중립국을 고집했다.
덕분에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안 받았다. 스위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땅은 작고 험한데 먹을 건 없어서 나치도 그냥 지나갔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스위스가 나치에 순응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나라가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연상케 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옳다 그르다 말이 많지만, 그 순간 우리 백성을 지킨 건 사실이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 있나.
대통령도 없다. 총리도 없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든다.
정상회담은 누가 가?
스위스는 7명의 연방 위원들이 이끌어 간다. 각각 외부무, 재무부, 내무부, 국방부, 법무부, 경제부, 환경교통에너지통신부의 장관들인데, 매년 이 중 한 명을 선출해 연방 위원회장을 맡긴다. 하지만 회장은 행정적인 권한이 거의 없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례적인 역할만 할 뿐이다. 대통령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런데 스위스는 신기하게도 여러 명의 리더들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공고히 하고, 직접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심지어 이 작은 나라를 26개의 주로 나눴는데, 주마다 일정한 자치권이 있고 각각의 법률이 있다. 국민들의 높은 정치 참여율과 낮은 정치 부패율로, 사회 시스템은 안정되어 있고 의사 결정 과정은 매우 투명하다. 우리 집 우편함에도 종종 투표용지가 온다. 'ㅇㅇ 구역의 터널을 뚫는데 찬성 / 반대', 'ㅇㅇ 자연보호 구역에서의 자전거 통행금지에 대한 찬성 / 반대' 등의 안건들이다. 관련된 예산 등 세부적인 내용도 같이 온다. 각각의 주 안에서도, 안건에 따라서는 동네 별로(우리나라로 치면 구나 동 정도)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한 동네라 하면 수만에서 수십만 쯤 될 것 같은데, 내가 사는 곳의 인구는 9천 명이다. 이것도 많은 편에 속한다.
대의 민주주의가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직접 민주주의도 함께 잘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샘이 난다. 아파트만 계속 생기는 한국의 고향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도롱뇽과 맹꽁이가 나온다는 숲과 산을 밀어버리고, 이미 많은 아파트를 왜 또 짓는가. 그 동네에 20년씩, 30년씩 살아온 친구들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이를 반기지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포퓰리즘을 좇는 정치인들이 많아진다. 그 끝에 오늘날과 같이 빨간 당이냐 파란 당이냐 하는 양당제가 되어 버렸고, 정치적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고, 유권자들은 선택지가 두 개 밖에 없어져 버렸다. 마치 우리의 주거 공간들이 자이냐 래미안이냐로 바뀐 것처럼.
정치 제도를 바꿀 힘은 없지만, 대통령 없는 중립국도 국민들이 아주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많은 내 나라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한 명의 리더를 믿는 것보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댈 때 더 좋은 방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우리는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위정자들은 다 도망가고, 민초들이 지켜낸 국가가 아니던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GPT가 열거한 9가지 이유.
1. 중립성과 정치적 안정
2. 은행업과 금융
3. 강력한 산업 기반
4. 높은 교육 수준과 숙련된 노동력
5. 국제 무역과 혁신
6. 삶의 질과 사회 시스템
7. 전략적 지리적 위치
8. 저지급과 효율적인 정부 운영
9. 관광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