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확장하는 우주 / 13장: 모든 것의 이론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찾아왔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이 네 가지 기본 힘을 통합하는 단 하나의 이론. 이것이 발견된다면,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공, 행복, 사랑, 성장... 이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전한 삶의 방정식이 완성된다."
— '우주와 삶의 통합 이론', 이진명 저
임지수의 오피스 책상 위에는 이진명의 책 '우주와 삶의 통합 이론'이 펼쳐져 있었다. 책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 옆에 놓인 봉투였다. 그 안에는 CEO가 방금 전 건네준 승진 제안서가 들어있었다.
"마케팅 이사직과 연봉 30% 인상." 지수는 제안서의 내용을 되뇌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제안이었다. 회사가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지수는 새로운 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제시했고, 그것이 회사의 매출을 극적으로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가 제안한 '공간 가치 마케팅' 전략은 부동산에서 배운 통찰력을 비즈니스에 적용한 혁신적인 접근법이었다.
지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주였다.
"지수 씨, 지금 어디예요? 용산에서 긴급 회의가 소집됐어요. 건물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대요."
지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회사인데, 최대한 빨리 갈게요. 어떤 문제인지 자세히 알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진명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이셨어요. 모든 투자자가 모이라고 하셨으니..."
"알겠어요. 한 시간 내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다니. 하지만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마치 우주가 그에게 시험을 내는 것 같았다.
CEO의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CEO는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어떤가, 임지수 씨? 제안 내용에 만족하나?"
지수는 의자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말 감사한 제안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CEO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물론. 얼마나 필요한가?"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결정이라서요."
"무슨 망설임이 있는 건가?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았나?"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그것과 회사 업무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CEO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 부동산 투자에 집착하고 있군. 솔직히 말하면, 임지수 씨의 재능은 마케팅에 있어. 그 분야에서 당신은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지. 부동산은... 그냥 부업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지수는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CEO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마케팅은 그의 강점이었고, 이 회사에서 그는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용산 프로젝트는 단순한 부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비전이자, 미래였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실을 나와 즉시 용산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지수는 승진 제안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연봉은 현재보다 30% 증가한 7,150만 원. 여기에 성과급과 스톡옵션까지 포함하면 연간 1억 원이 넘는 수입이 예상되었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자금 마련에도 큰 도움이 될 금액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담도 컸다. 이사직은 더 많은 시간과, 무엇보다 온전한 헌신을 요구할 것이다. 용산 프로젝트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용산의 건물 현장에 도착했을 때, 투자자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이진명의 표정은 심각했고, 민주는 뭔가 고민에 빠진 듯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수가 모임에 합류했다.
이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모두 모였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건물 실사 과정에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태블릿을 꺼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첫째, 건물 기초 공사에 심각한 결함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정밀 검사 결과 지하 기둥 몇 개에 균열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보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상당한 추가 공사가 필요합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이진명은 계속했다.
"둘째, 건물의 용도 변경 인허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최근 용산구의 도시계획 변경으로 문화시설 설립에 추가적인 규제가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전환이 예상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한 투자자가 질문했다. "그럼 추가 비용은 얼마나 예상되나요?"
"기초 공사 보강에 약 5억 원, 인허가 관련 설계 변경과 행정 비용에 2억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총 7억 원의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죠."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7억 원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원래 계획된 총 투자금 65억 원에서 10% 이상 증가한 금액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진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첫째, 추가 투자금을 모집하여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 둘째, 이 건물을 포기하고 다른 물건을 찾는 것."
의견은 갈렸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니 계속 진행하자는 입장이었고, 다른 투자자들은 위험 부담이 커졌으니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지수는 고심하다가 발언을 요청했다. "제 생각에는 이 도전을 극복할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추가 비용을 단순히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회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건물의 기초 보강은 장기적으로 보면 자산 가치를 높이는 투자입니다. 그리고 인허가 문제는 오히려 우리 프로젝트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규제를 극복한 공간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마케팅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의 말에 몇몇 투자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도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추가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입니다." 지수가 계속했다. "제 제안은 이렇습니다. 현재 투자자들이 비례적으로 추가 투자를 하되,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추가 투자금에 대해서는 우선 수익 분배권을 부여하는 겁니다."
이진명이 관심을 보였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지수는 노트북을 꺼내 준비해온 파일을 열었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답게 위기 상황에 대비한 대안을 미리 구상해놓았던 것이다.
"이런 방식입니다. 각 투자자의 원래 투자금에 비례하여 추가 투자를 요청하되, 이 추가 투자금에 대해서는 연 10%의 우선 수익을 보장합니다. 프로젝트 수익에서 이 부분을 먼저 분배한 후, 나머지 수익을 원래의 지분대로 나누는 거죠."
투자자들은 지수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자, 분위기는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저는 임지수 씨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한 투자자가 발언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죠. 이 문제를 극복하면 우리 프로젝트는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민주는 의외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투자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난 후, 지수는 민주에게 다가갔다.
"민주 씨,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민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수 씨,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당신의 접근 방식이 너무 숫자 중심적이라고 생각해요."
지수는 놀랐다. "무슨 말이에요? 제 제안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재정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어요."
"어떤 점이요?"
민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건물의 기초에 문제가 있다는 건,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죠. 우리가 만드는 공간에는 실제 사람들이 드나들고, 그들의 생명을 우리가 책임져야 해요."
지수는 반박하려 했지만, 민주는 계속했다.
"게다가 인허가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규제는 그냥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지역사회의 조화를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이걸 그냥 마케팅 요소로만 생각한다니... 당신은 숫자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신이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 민주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 차갑고 계산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지수가 더듬거렸다.
"알아요. 당신이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민주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가끔 당신은 너무 효율성과 수익률에만 집중해서, 그 뒤에 있는 인간적인 가치를 놓치는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수는 민주의 말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측면을 간과했을 수도 있었다.
"민주 씨, 저도 사람들의 안전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만 접근 방식이 다를 뿐이죠."
"정말요? 그럼 이런 질문에 답해보세요. 이 건물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수리만 하고 진행할 수 있나요? 만약 나중에 문제가 생겨서 누군가 다치면 어떡할 건가요?"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주의 질문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찔렀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주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건물을 찾아야 해요. 안전을 담보로 수익을 추구하는 건 제 가치관과 맞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최후통첩처럼 들렸다. 지수는 이것이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그들의 관계에 근본적인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생각해볼게요." 그가 겨우 말을 꺼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아요. 우리 모두 이 프로젝트에 많은 것을 투자했으니까요."
민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결연해 보였다. "저도 생각해볼게요. 하지만 제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졌다. 지수는 혼자 한강변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하루에 두 개의 중대한 갈림길이 그 앞에 놓였다. 회사의 승진 제안과 민주와의 가치관 충돌. 두 문제 모두 단순한 결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든 것의 이론'... 이진명의 책 제목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처럼, 그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어떻게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할 수 있을까?
마포의 원룸으로 돌아온 지수는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함께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삶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과 투자, 그리고 관계... 이 모든 요소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전체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수는 노트북을 열고 메모를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항상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1. 회사 승진 제안
장점: 안정적인 수입, 경력 발전, 전문성 강화
단점: 시간 부족, 자유 제한, 창업 및 투자 기회 축소
2. 용산 프로젝트
원래 계획대로 계속: 수익 가능성, 이진명과의 네트워크 유지
민주의 우려대로 철수: 안전 문제 해결, 윤리적 투자, 민주와의 신뢰 유지
3. 민주와의 관계
가치관 차이: 나는 효율성 중심, 민주는 가치 중심
조화 가능성: 양측 모두 타협 필요
메모를 작성하면서도, 지수는 이것이 단순한 장단점 분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가?
휴대폰이 울렸다. 이진명이었다.
"임지수 씨, 오늘 회의 후 생각이 많으실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네, 선생님. 솔직히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이해합니다. 민주 씨와도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더군요."
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꽤 심각한 것 같아요. 민주 씨는 제가 너무 숫자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군요." 이진명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런데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숫자와 가치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그는 우주의 법칙을 수학적 방정식으로 표현했죠."
"무슨 말씀이신지..."
"모든 것의 이론은 단순히 모든 물리 법칙을 하나의 수식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죠. 임지수 씨와 민주 씨는 같은 현실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수는 이진명의 말을 곱씹었다. "그럼 저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번역이 필요합니다." 이진명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숫자 언어를 민주 씨의 가치 언어로, 그리고 민주 씨의 가치 언어를 당신의 숫자 언어로 번역해보세요. 두 언어가 사실은 같은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통화가 끝난 후, 지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진명의 말에는 깊은 통찰이 있었다. 그는 민주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안전 문제... 이것을 단순히 추가 비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본다면? 인허가 이슈... 이것을 단순한 행정적 장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을 위한 필요한 과정으로 본다면?
그러자 민주의 관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 건물은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담기는 그릇이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안전하고 건강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지수는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째, 회사의 승진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그것은 안정적인 미래를 약속했지만, 그의 진정한 꿈을 좇을 자유를 제한할 것이다.
둘째, 민주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열기로 했다. 그는 그녀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함께 더 나은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 말하기로 했다.
회사에 도착한 지수는 곧바로 CEO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의 결정을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승진 제안을 수락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수가 말했다.
CEO의 표정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정말인가? 무슨 이유라도?"
"제가 현재 추진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가 단순한 부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일이에요. 이사직의 책임을 다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임지수 씨, 당신의 재능이 아깝습니다. 그 재능을 부동산에 묻어두는 건 낭비예요."
지수는 미소 지었다. "마케팅에 대한 저의 열정은 변함없습니다. 현재 직급에서도 회사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만, 저에게는 여러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CEO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소.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다시 이야기해주시오."
회사를 나온 지수는 바로 민주에게 연락했다. "민주 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들은 한강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해가 지고 있는 강변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회사 승진 제안을 거절했어요." 지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민주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왜요?"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요. 그리고... 민주 씨 말이 계속 생각났어요. 제가 정말 숫자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 건지..."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후 계속했다.
"어제 밤 많이 생각해봤어요. 민주 씨 말이 맞아요. 저는 너무 효율성과 수익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제가 사람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민주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용산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어요. 민주 씨가 걱정하는 안전 문제는 정말 중요해요. 단순히 추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죠."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요?" 민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이 건물을 포기하고 새로운 물건을 찾는 것에 동의해요. 하지만 이유는 조금 달라요. 저는 이것이 단순히 윤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현명한 투자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안전한 건물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높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민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수 씨... 정말 생각이 바뀐 거예요?"
"완전히 바뀌었다기보다는, 좀 더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여전히 숫자와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과 가치도 더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민주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사과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단정지어서 판단했던 것 같아요. 지수 씨가 냉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저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죠."
그들은 한강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진명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지수가 말했다. "우리는 같은 현실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고요. 저는 숫자의 언어로, 민주 씨는 가치의 언어로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민주가 공감했다. "결국 우리 둘 다 좋은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싶은 거잖아요. 방법과 표현만 다를 뿐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우리의 차이가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효율성을 찾고, 민주 씨가 가치를 지키면... 함께라면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밤이 깊어갔지만,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용산 프로젝트의 새로운 방향, 더 안전하고 가치 있는 건물을 찾는 계획, 그리고 그들의 협력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별이 빛나는 한강변에서, 지수는 처음으로 진정한 '모든 것의 이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하나의 수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과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지수는 이진명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민주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용산 건물은 포기하고 새로운 물건을 찾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것은 후퇴가 아니라, 더 나은 도약을 위한 결정입니다. 모든 것의 이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이진명의 답장이 거의 즉시 도착했다.
"훌륭합니다. 진정한 투자자는 건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지금 더 나은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마포의 원룸으로 돌아온 지수는 창가에 서서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처럼, 그의 삶의 여러 요소들—일과 투자, 효율성과 가치, 그리고 그와 민주의 관계—도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모든 것의 이론'을 찾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여정에 함께할 동반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