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하지 않아도 괜찮은 계절
점점 꽃망울을 터뜨리며 나타나는 꽃들,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들. 그런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선다. 분명 예쁘다고 느끼는데, 마음이 벅차진 않는다. 그저 시간이 또 이렇게 흘렀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든다.
사람들은 "봄이다, 기분 전환해야지"라며 들뜬 목소리를 낸다. SNS의 피드는 벌써부터 봄꽃 여행지를 추천하는 게시물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계절을 환영하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나는 조용하다. 마음이 뒤따르지 않는 속도에 맞춰 웃어야 하는 기분. 이 아름다움에 감동하지 않는 건 나만 그런 걸까?
봄은 아름답다. 그래서 가끔 피곤하다. 모든 게 변하고, 살아나고, 피어나는 계절. 모두가 벅차오름을 느끼는 그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 때때로 나는 무언가 느껴야 한다는 의무를 내려놓고 싶어진다. 아무 일도 없던 날에도 계절은 바뀌고, 꽃은 핀다. 나는 다만,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봄이 오기 전의 시간은 길다. 날이 풀릴 듯 말 듯 애매한 날씨, 묵직한 외투를 벗지 못하는 아침,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 그 모든 인내의 끝에서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봄이 오는 걸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정작 봄이 오는 순간은 스쳐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깨달을 것이다. '아, 봄이었구나. 그게 다였구나.'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도착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봄은 매번 그런 식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계절을 '기다림보다 짧은 것'이라고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봄을 걷는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계절의 결을 가장 먼저 발견한다. 바람이 바뀌고, 나뭇잎이 여려지고, 햇살이 옅어진다. 봄은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온다.
하지만 모두에게 봄이 비슷하게 찾아오지는 않는다. 나는 문득 창문 없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떠올린다.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 환기 안 되는 사무실, 병실의 누군가. 그들에게 봄은 풍경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으로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은 종종 그런 방식으로 계절을 눈치챈다.
거리에는 꽃이 피고 봄꽃 명소엔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장면을 휴대폰 화면에서만 본다. 아니, 아예 보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르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봄을 감지하고, 누군가는 봄을 통과하며, 누군가는 봄을 건너뛴다.
나는 매일 봄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봄을 놓치고 있는 이들, 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들. 그런 삶에도 봄은 언젠가 닿을 수 있을까.
조용히 견디는 삶 속에서 말없이 머무는 봄. 나는 그들을 상상하며, 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이 계절이 '서서히 스며드는 숨결처럼' 도착하길 바란다.
봄 우울증이라는 것이 있다. 봄이 오면 마음이 뒤숭숭해진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햇살이 쏟아지고 꽃이 피는데,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오히려 우울하다고 말한다. 감정이 기상과 반대로 흐른다는 게 묘하게 공감이 간다.
요즘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멀쩡하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긴 하지만 그게 감정의 파도처럼 밀려오진 않는다. 봄이 온다, 그렇구나. 그 정도다. 예전엔 그게 나만 그런 건가 싶어 살짝 이상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누군가는 벅차고, 누군가는 무너지는 듯한 계절에 혼자 너무 정돈되어 있는 기분. 조금 미안했고, 조금 둔감해 보였고, 조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마음의 계절은 다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는 봄이 되어서야 괜찮아지고, 누군가는 봄이 지나가고 나서야 괜찮아진다. 그리고 나는, 그냥 봄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우울해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봄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있다는 걸 안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이 계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봄을 인식하든 말든 계절은 제 할 일을 한다. 기온은 오르고, 풀은 자라고, 도시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녹색이 번진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나는 때때로 봄을 놓쳤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딱히 감흥이 없어서. 하지만 그렇게 무심히 흘려보낸 날들 속에서도 돌아보면 분명히 봄은 있었다. 편의점 과일 코너에 딸기가 진열되고, 산책 중에 스친 꽃나무의 냄새가 달라지고, 동네 강아지들의 털갈이 시기가 도착하고. 그 모든 미세한 변화들이 봄의 증거였다.
우리는 알지 못한 채 계절을 살아낸다. 거창한 감정이나 기념할 만한 사건 없이도, 하루하루가 쌓이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이제는 계절을 '느끼는' 것보다 그저 '살아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감동하지 않아도 괜찮고, 들뜨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절이 우리를 지나갔다는 것.
봄은 모두에게 오지 않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채, 저마다의 속도로 지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