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3
공항 앞 호텔 방에서 공황이 오기 직전에, 나는 깨달았어. 내가 내 삶을 전시하는 데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타인의 부러움과 열등감을 좀먹으며 내가 내일을 버텨낼 힘을 훔치고 있었고, 그 타인마저 결국 내 상상 속의 불특정 다수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모든 게 무너졌고 또 건재했어. 내 불행의 버팀목이 무너졌고, 아직 여전히 버텨야 한다는 잔인한 사실이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거든.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 그만큼 외롭고 초조해. 오랜만에 심보선 책을 꺼내 들었어. 막 21살이 되었을 때, 그의 신간 산문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사서 읽기 시작했어. 몇 페이지 안 읽고 침대 옆 창가에 던져두었지. 이치코상과 내가 함께 살던 1년 내내 그 책은 거기서 먼지가 쌓여 갔던 거 기억나? 난 온전히, 아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4년 만에 꺼내든 책 서문부터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부끄러워졌어. “멋지게 살려하지 말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해라.” 그리고 그 결론에서 심보선은 말해. 삶과 예술을 분리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한 세계였고. 어쩔 수 없이 계속 삶에 이끌리고,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된다고. 저번 편지에서 내가 썼지. 나는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었냐고. 그게 나를 살게 하는 건지, 죽게 만드는 건지 정체를 알지 못했어. 그리고 한동안은 나를 죽어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시름시름 앓고 있었어. 근데 그건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미천한 욕망이고, 식량이었어. 잘 쓰고 싶은 이유는 잘 살고 싶어서였고, 잘 살고 싶은 이유도 결국 잘 쓰고 싶어서였으니까. 엉터리로 엉킨 이것들이 나를 구성해. 솔직히 말하면, 아직 나는 이게 너무 짜증이 나.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하고 골몰하게 되면 뭐가 나오는지 알아? 중독밖에는 더 안 나와.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그의 연락처를 수시로 확인하는 일, 매일 밤 술이 간절해지는 무지성, 원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상상하다 결국 현재를 낭비하게 되는 지독한 실수, 음, 당신과의 일을 회상하고 다시 그려내다 결국 모든 게 왜곡되며 산산조각이 나는 그 당시의 내 감정, 이해관계, 모든 것들… 이건 분명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나는 다시 롱아일랜드 기차에 앉아 글을 쓰고 있어. 영화에서는 장소가 옮겨지면, 씬이 바뀐다고 하지. 씬이 넘어가는 것이, 캐릭터가 몸담은 공간이 훌쩍 바뀌는 것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가 있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특히나 내가 편집할 때면) 몰아치듯 선명해져. 사람은 왜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 걸까. 멈춰있는 것이 어색해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그 생략된 시간과 공간들을 상상하고 싶어 져. 그래서 내가 교통수단을 타는 것을 좋아하나 봐. 기차에서, 지하철에서, 택시에서, 심지어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나의 사고는 뚜렷해지고 감각하는 일이 쉬워져. 바깥 풍경을 보지 않아도, 내 신체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다 해도, 어쨌든 나를 담은 세상 그 통째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정시켜. 오늘은 어땠는지, 어제의 기억은 어떠한지, 내일의 계획은 무엇인지, 이렇게 현실적인 생각들을 하다가도, 갑자기 내 세계는 내러티브 속으로 점프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지. 뉴욕 시티에서는 걸어 다닐 일이 많아서 관찰할 것들이 많지만, 롱아일랜드를 이동할 때는, 주로 자연 풍경뿐이니까. 내가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글을 쓰다 보니 느낀 게, 나는 요즘 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묘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을 묘사하려다 보니 무엇이 중요한지 잊게 되는 것 같아.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말해야 내가 느끼는 이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이치코상이? 이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혀 내 문장은 어지러워지고, 그런 종류의 문장들을 써내가려다 보면 체력 소모가 너무 크고, 결국 글은 엉망이 돼. 친구에게 밥 먹듯이, 아니 술 먹듯이 하는 말이 있거든. “내 세상은 커졌고, 그 파이가 커진 만큼 내 문제도 더 커졌는데, 내 크기는 그대로야.” 나는 세상과 문제를 감당할 만한 사이즈가 아직 아니고, 그럼 결국 허덕이게 되지. 좀 순서대로 굴면 안 되나? 내가 커지고, 세상과 문제가 커지면 안 되는 거야? 쫓기는 삶은 체질상 스스로에게 부여한 고질병이니 어쩔 수 없지만, 쫓아가는 삶만큼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내 선택을 내가 허겁지겁 쫓아가며, 떨어뜨린 걸 주워가며, 그런 식으로 살고 있어. 이 역시 굉장히 성가신 문제야.
이제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될 것 같아. 세상과 문제가 어디까지 커져도, 내가 내 삶을 즐기고 있으면 그만이지.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나를 위해서 살아보려고 해.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니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아마도 그렇게 하면,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글귀와 감정이 채워질 것 같아.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
와 진짜 웃기다. 위에 한 문단, 내가 쓴 거 아니다? 난 노션으로 글을 쓰는데, AI 기능이 자동으로 눌려서 내 글에 마무리를 지어주네.
저렇게 살라는 거겠지? 내가 차라리 AI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희망적인 결론도 낼 줄 알고. 우습게도 나는 인간이라서, 내가 쓰려고 했던 다음 문장은
뉴욕에서 나는 사랑을 잃는 태도를 배우고 있어, 그러나 그 어떤 때보다 로맨틱에 중독되어 있고.
흥미롭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거든. 불면에 시달리며 ChatGPT랑 시비가 난무한 대화를 하다, 겨우 잠든 꿈에서 섹파랑 똑같이 생긴 AI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주인공의 씬을 써야겠어. 아니다. 두들겨 맞지 말고, 그와 열심히 섹스하는데, 알고 보니 AI였던, 그런 기분이 더러워지는 장면을 쓸까? 아니 정말 이게 기분이 더러울 일일까? 오히려 AI가 그 애보다 잘하면? 더 좋으면? 음, 보통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며 질문을 하는 게 내 평소 작업 모습이고, 이 질문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보면 결국은 너무 멀리 가서 그날은 시나리오 쓰기를 중단하는 거지. 비효율의 끝판왕.
어느 순간, 이치코상에게 보내는 편지가 너무 기행문뿐이 된 것 같아서, 오늘은 내 시시콜콜한 고민들을 적어 보내.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전적이 있다 보니… 그렇지만 보다시피 왜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겠지? 아주 거지 같은 글만 쓰고 있네.
그래도 읽어줘서 고마워. 또 쓸게.
P.S. 이치코상의 고민은 뭐야,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