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3
이치코상에게
내 일상을 멋대로 적어 놓은 조각들을 잃어버렸어. 건조한 큐티클, 내 어린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는 뉴욕의 가을 기억들.
집에 들어가지 않은 지 3일째. 나는 떠돌아다니며 살고 싶어 이 도시에 도착한 걸까? 잠에 대한 부담을 버리기 위해 내 이부자리를 버렸어.
우리 넷이 모이면 항상 양아치가 돼. 뉴욕 뒷골목 말고, 이스트 빌리지 한복판 어린양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고, 멈춰 선 차 열린 차창 안으로 시비 같은 안부를 던져. 깔깔대. 유치함과 무모함이 우리의 힘이야. 가려던 바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입구 앞 계단에 앉아 드럭 스토어에서 사 온 맥주를 마셔. 어엿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도 젊은 우린 충분히 즐거워. 가려는 바마다 만석이야. 느닷없이 바 호핑이 시작되고, 실패의 연속이야. 내내 허탕 치는 우리는 술집 화장실이나 쓰고 말지. 그리고 계속 걸어. 푸드 트럭 옆을 지날 때마다 배고프다고 소리치는 친구와 구글 맵을 키고 다음 행선지에만 집중하는 친구, 충분히 고조되어 하늘을 향해 큰 들숨과 날숨을 뱉는 친구와, 이 모든 걸 바라보는 내가 있어. 연기처럼 사라질 이 순간들을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 고민해. - 술에 잔뜩 취해 휘갈긴 수요일 밤 고성방가 일기.
마음에 드는 가죽 재킷을 찾으려 미친 듯이 쇼핑하던 가을 초입. 마침내 찾은 다 해진, 그러나 멋들어진 빈티지 블랙 재킷, 120달러. “이 재킷을 사면 일주일은 굶어야겠죠.” “Grocery can’t make you fly, but this jacket can. Right?” - 빈티지 샵 직원의 달콤하고 일리 있는 유혹.
아이스 라테를 핫 오트 라테로 바꿔 주문하기로 결심한 어느 아침. 모닝커피로 알아채는 계절의 변화. 지나간 시간에 아쉬워하기보단 그냥 따뜻한 내 커피에 설레려고.
“우린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대화하지 않아. 언어를 뛰어넘는 그 어떤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 거야.” 영어와 한국말 사이에서 결국 0개 국어가 된 나를 위로하는 친구의 한마디.
어퍼 웨스트의 한 하우스 파티. 다양한 언어의 픽업 멘트를 수집하는 저널리스트. 한국말로 하는 플러팅. “라면 먹고 갈래요?” 너무 올드한 멘트인가. 그렇다면 내가 질문을 던지지. “너랑 잘래와 너와 함께 있고 싶어의 차이는?”
내 얇은 한국 담배를 하나만 사도 되겠냐고 지폐를 건네는 노숙자. 한 개비를 그냥 주고 지나오며 친구와 나눈 추측성 대화. “얼마짜리 달러였을까?” “1달러 같던데.” “오 마이갓, 내 담배는 그보다 더 값져.”
맨해튼 1번가 고층 빌딩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름 모를 레드 와인을 마시며 디제잉의 열기를 식힌다. 건너편 거리에서 커플이 소파를 옮기고 있다. 힘겹지만 낭만적이다. 모닝 에브리띵 베이글을 야식으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친구와 다툰다. 흑맥주가 저녁이고, 와인이 야식이다. 금연 빌딩에서 몰래 베이핑을 한다. 조그휠을 어떻게 돌려야 더 좋은 사운드가 나는지 계속 고민한다. 루프 타이밍을 놓치고 아쉬워한다. 트로피컬 하우스가 취향은 아니지만, 우연히 틀게 되면, 스텝에 맞춰 춤을 춘다. - 이젠 무척이나 흐릿해진 8월의 랜덤 일기
“뭔가가 맞다고 확신했던 순간들이 무너지는 거고, 확신이 사무쳐지는 때가 지금인 거야. 이별은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밤이야.” 그 날밤 내가 쓴 한 줄. 더도 덜도 쓸 수 없었던 내 마음.
“세상은 엿같아.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아.” So로 귀결하던 나에게 But을 알려준 너. “세상은 엿같아. 그러나 너의 삶은 계속 나아갈 가치가 있어.”
현재의 쾌락에 머물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는 거라고, 끊임없이 나를 붙잡았지. 나는 내 룰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게 선택해 오던 내 평생의 기준을 더는 지키지 않기로. 그걸 성장이라고 불러주지 않아서 속상했어.
첼시의 한 아트 커뮤니티 스튜디오. 우릴 데려간 친구가 나를 필름메이커라고 소개하자, 옆에서 Also writer이라고 나 대신 내 타이틀 하나 더 소개해 주는 너. 나는 필름메이커이자, 작가이자, 디제이. 뉴욕에선 그렇게 소개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껴. 여긴 모두가 모든 걸 하는, 모두가 모든 것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곳이니까.
20번가에서 112번가까지 북쪽으로 6 트레인을 타고 올라가고, 동쪽 112번가에서 서쪽으로 시티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여정. 아빠의 필름 사진 속 내가 가진 단서는 W 112st 표지판 하나. 아빠는 도대체 무슨 일로 이 험한 맨해튼 위쪽 동네에 오셨나요. 관광 가이드를 따라갔다는 그곳은 거대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왜 교회를 뒷배경으로 사진 찍지 않고 반대편 스트릿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서 이렇게 우리를 헤매게 하는지, 고민하다 자문자답. “아빠나 나나 흔한 거 안 하려고 애쓰는 건 똑같아. 너무 쉽잖아, 교회 앞에서 사진 찍는 건. 우린 그 대신 다른 걸 주목하려고 노력해.” 이토록 확고한 부녀의 나르시시즘. 검은 선글라스, 검은 가죽 재킷, 베이지색 겨울 바지, 검은 가죽 구두. 젊은 시절 아빠의 패션은 나의 패션과 엇비슷하게 닮았어. 나도 검은 선글라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대신 난 펑키한 스타일의 청 베기 팬츠, 그리고 그라피티로 커스텀한 에어포스원. 당신과 나는 참 멋져. 속으로 생각했어. 2002년도의 뉴욕과 2023년도의 뉴욕은 검은색으로 페인트칠한 가로등과 약간 보수 공사한 건물 외벽 말고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어. 아빠와 나는 20년 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세월은 공간 말고 사람을 관통하길 선호하나 봐. - 아빠의 2002년도 뉴욕 사진을 재현하는 큰딸의 포토슛 프로젝트.
“자긴 낭만이 없어. 근데 낭만이 있는 애들은 대책이 없더라.” 지하실 파티에서 만난 부담스러운 언니가 보드카 토닉을 내 무릎에 쏟는다. 파란 머리를 했고, 아주 긴 손톱으로 자꾸 나를 쓰다듬는다. 내가 자리를 피하려 얼굴을 찌푸리자, 언니는 내게 저렇게 말했다. 속으로 삼키는 대꾸. 언니, 그 낭만 때문에 내 인생이 조진 거예요.
유니온 스퀘어 파크 앞 대형 서점에서 고개 숙여 펑펑 울 때, 나는 깨달았어. 내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구나, 영화도 아니구나. 내가 뉴욕에서 울든, 한국에서 울든, 그 어디 어떤 곳에서 울든 내 슬픔은 ‘울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구나. 그때 너는 내게 다 구겨진 스타벅스 냅킨을 건네며 말했지. “적어도 뉴욕은 네가 이렇게 울어도 너한테 관심 꺼주잖아. 온 앤 오프 프라이버시.”
내가 멘 짐가방이 너무 무거워 차라리 모든 의미를 갖다 버린 나날들 속에서, 나는 계속 창밖을 확인해. 혹시라도 우연히 이치코상이 지나가진 않을까. 웃고 마시고 울고 소리치고 먹고 일하고 섹스하고 대화하는 시끄러운 이 도시에서 나는 그런 귀한 우연을 기다려.
PS. 한 해가 끝나가네. 괜히 드라마틱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어. 오늘은 추수감사절이야. 사람들은 포근하고 행복해. 이치코상 잘 먹고 잘 살구 있냐. 연락도 없고 너무 하네.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