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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또 기억하라, '보통명사의 광주'를

'소년이 온다' - 시공간을 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광주'

by 윈디박 Ma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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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천불이 난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도 시시때때로 몰려드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꼬박 밤을 새운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눈앞에서 놓친 '복수자'의 '회한'과 '자책', 그리고 '다짐'의 밤이 그럴까, 

'희망의 새벽'을 기다리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나약하지만 '중력의 평안, 절망'의 품 안으로 뛰어들까, 겉으론 부인하지만 한낱 겁쟁이 필부에 불과한 내가 이러한 생각을 떨치기 쉽지 않다.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절망은 중력의 평안이라고 할까,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까지

힘을 다 빼고, 그냥 피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으면 되는 걸

뭐.....

그래도 머리는 연분홍으로 웃고 있잖아. 절망엔

그런 비애의 따스함이 있네


- 김승희 <희망이 외롭다> 중에서

(당연히 <희망이 외롭다>는 절망에 안주하라는 시가 아니다)


고개를 흔들고 정신 차리라며 뺨을 두드리고 나는 '해야 할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한강의 책을 펼친다.

'소년이 온다'의 낯익은 지면과 문장이 시야에 들어오면 '한가한 절망'과 '나른한 냉소'의 감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만다.

그곳엔 '희망'이 있는가 헤아리기 전에 그곳엔 고통이 있다.

도망치고 싶지만 반드시 시간 내에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인 것처럼,

적어도 이 땅에 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결연히 읽어 내려가야만 하는 '처절한 산 자와 죽은 자'의 '진실'이 있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2014년에 출간한 '소년이 온다'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나서야 뒤늦게 읽었다.

책을 읽은 직후 느낌을 적고 싶었으나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비루한 표현으로 감히 이 책을 논할 수가 없었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 몸과 영혼이 남김없이 파괴된 희생자의 절규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모든 참담한 비극을 증언해 내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처절한 소명의식에 탄생된 '고백의 서사'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으나 눈물겹도록 황홀하고 아름답다.

헤아릴 수 없는 그 고통의 깊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는 듯한 전율의 감정을 전하지만, 바늘 끝이 손톱 밑을 찔러 피가 나오는 아픔 속에서도 그의 문체, 그의 단어, 그의 문장들은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면서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극치를 시현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소년이 온다'를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 이유를 한강과 '광주'가 함께 쓴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가 결코 작가에게

결례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신형철 선생은 비극의 역사를 기록하고 '죽은 자'를 영원히 기억하고 기리는 일을 하는 것이 '문학이 할 일'이라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죽음을 살아있게 할 수 있다'라고, 바로 한강의 소설이 그 '애도문학'의 역할을

집요하게 해 왔다고 역설한다.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 소년이 온다 (한강 2014)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림원에서 노벨상 수상자 강연을 진행한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며 쓴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광주'를 언급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는 그럴 수 있다는 걸 증거 하는 중이다.

시민이, 젊은이들이, 그리고 우리의 숭고한 '망자'들이 '광주의 그 밤'으로부터 44년이 지난 오늘,

우리를 살렸고 살리고 있다.


그저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또 기억하고 기억하라.

찢기고 찔리고 난도질된 '보통명사'의 '광주'는 다시 살아나고

또 죽고 또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더불어 '한강의 문학'과 '광주'는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살자, 살아내자, 반드시.'

불면의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벽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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