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초입에서
가여운 아줌마들의 고뇌
11월 어느 주인가 난 돌냄비와 스텐냄비 둘을 태워 먹었다.
맛난 된장찌개를 상하지 않게 끓여 놓을 심산으로 가스레인지를 켜 놓았는데
마침 여보가 운동하러 가자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난 후딱 정리해 놓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후다닥 뛰어나가 룰루 랄라 운동하며 수다 떨며 아무 생각 없이 두어 시간이 흘렀나??
딸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가스를 안 끄고 나가면 어떻게?! 집안이 난리가 났잖아!"
"시커먼 연기가 꽉 차서 콩콩이 죽을 뻔했다고!"
"헉! 오 마 이 갓!!”
(그 당시 내 가스레인지는 과열되면 자동으로 꺼지는 기능이 없었다.)
하아!
가슴이 철렁했다. 콩콩이도 콩콩이지만, 집을 다 태워 먹을 뻔한 것이다.
몇 날을 냄새가 옷에 배었다며 투덜거리는 딸내미의 원망을 들어야만 했다.
또 한 번은, 시원하고 맛있게 끓여 놓은 콩나물국이 상할까 봐 끓여 놓으려고 했다.
감기약을 먹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방에 가서 잠시 누워있다 나와야지”
생각하고 누웠다. 거실에 있을 것이지. 쯧쯧쯧
아주 잠깐, 정말 눈 깜짝할 동안인 듯했는데, 냄새에 놀라서 눈을 떴더니 20분쯤(?) 지나 있었다.
물론 또 연기도 가득하고, 냄새도 진동을 했다.
에고,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감기약 먹고 잠시 누워있다가 냄비 태워 먹은 경험은 전에도 있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을, 다짐을 했건만, 또 이렇게 집을 태워먹을 뻔했다.
얼마 남지도 않은 거, 좀 상해서 버리게 되면 말지?!
그냥 편히 쉬기나 할 것이지. 으그!!
여보와 딸이 들어와서 지청구를 해대는데, 변명 거리가 없었다.
다음 날 저녁, TV 볼 것이 없다 하며 채널 서핑하는 중, 홈쇼핑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내게 냄비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여보, 나 저거 살까 봐! “
여보 왈,
"사지 뭐! 일주일에 냄비 두 개씩 태워 먹으려면 더 있어야 할걸?!"
‘씽! 그럴 수도 있지. 계속 우려먹네!’
어쨌든, 덕분에 냄비 세트를 들였다.
‘독일산 통 5중 스탠 냄비’ 와우!! 두툼한 것이, 맘에 들어!
근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 있다.
수요일 에이레네 연습 시간에 맞춰 일찍 가서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갈아입었다.
근데 도대체 내 블라우스 지퍼를 누가 올려줬지?!, 기억이 안 났다.
분명 내가 올린 것 같지는 않은데?! 누구지?!
"누가 내 지퍼 올려줬어요?"
"야 네가 올렸겠지 누가 올려!"
"진짜?! 아무도 안 올려줬어?”
한참을 내가 태운 냄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역시나 집사님 권사님들에게 한 마디씩 걱정의 말을 듣고, 조심하라고 안타까운 지청구를 듣고 난 후여서, 난 여지없이 또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연습이 시작되고, 한참 열심히 하고 있는데 뒤에서 "윤 집사님"이 은근슬쩍 날 불렀다.
"야! 소희야!"
"어?"
"내가 올렸다!"
"허얼!"
잠시, 아주 잠시 서로 눈만 빤히 쳐다보며, 공황 상태에 놓인 후,
우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큭큭큭
웃음을 흐느끼느라 연습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앞에서 뭔가 설명하고 계시던 최 권사님 화나기 일보 직전까지 우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캭캭캭푸하하하하하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게 웃긴다. 기가 막히게 웃긴데 뭔가 서글프기도 하고 참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언냐!! 그래도 난 다 이해해, 다 이해해!!
하아! 어쩌겠는가?! 가여운 아줌마들의 고뇌인 것을.
그래도 "사랑해요."
오히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다른 아줌마의 고뇌로 웃픈 일들이 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애써 인정하려 한다. 애써 이해하려 한다. 애써 반복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