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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

by Popfeelter Mar 18. 2025



  8시 55분. 평일이라면 질겁을 하며 침대에서 튀어 올랐을 시간.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기에 그 시간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억울했다. 모처럼 쉬는 날에 이렇게 일찍 맞이하는 아침이라니. 이건 무조건 눈을 한 번 더 감아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잠시 후의 내가, 그리고 내일의 내가 덜 억울할 테니. 그리고 그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다시 잠에 든다.



  10시 30분. 새벽 두 시쯤에 잠들었으니 수면 시간이 여덟 시간을 넘긴 셈이다. 열 시간을 채워볼까 싶어 눈을 다시 감았지만 이미 충분한 휴식 시간을 채웠다고 판단했는지 잠은 쉽사리 들지 않았다. 11시. 결국은 누워있기를 포기하고 몸을 일으켜 세탁기 전원을 켰다.



  마지막 빨래가 일주일 전이었던가. 평일에 한 번은 꼭 세탁기를 돌려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퇴근 후에 집으로 곧장 오는 일이 거의 없고, 곧장 온다 하더라도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세탁 예약을 돌려두고 출근하자니 퇴근 후 몇 시에 집으로 돌아올지 미지수. 그렇게 나의 평일 빨래는 늘 실패로 돌아간다. 평일 내내 빨래를 하지 않았으니 주말엔 세탁기의 소음을 참아내야만 한다. 중문을 닫아두고 조금이나마 작아진 세탁기 소리를 들으며 옷장 문을 열었다.



  잔뜩 구겨져 있는 옷가지들. 매일 저녁 다음날 입을 옷을 찾느라 뒤적거렸던 터라 옷장 안이 엉망진창이다. 잠들기 직전엔 늘 모든 게 귀찮아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옷들이 그 비좁은 옷장 안에서 뒹굴뒹굴하는 통에 옷장 문은 늘 옷을 다 토해내기 직전이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마냥 잔뜩 밀어 넣어져 있는 그것들을 드디어 구해주는 날. 옷장 저 깊숙한 곳으로 두 손을 집어넣어 모든 옷가지를 끄집어냈다. 한 장 한 장 다시 펼쳐 착착 개어주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이 정갈한 모습이 며칠이나 갈까, 하는 생각에 잠깐 실소가 터졌지만 일단 그런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중문을 여니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그리고 그 위 싱크대엔 이틀을 쌓아두었던 설거짓거리들. 게을러터진 날들 뒤에는 어쩔 수 없는 부지런한 날이 찾아오는구나. 미뤄둔 설거지를 하며 한숨을 뱉어냈다. 그냥 어제 할걸, 하는 후회도 함께.



  오늘은 일요일이니 작업실에 가야 한다. 글도 써봐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밥을 차려 먹기는 귀찮으니 라면을 끓이면서 오늘의 할 일을 생각했다. 내가 짜둔 루틴을 모두 실행해야 하니 꼼짝없이 작업실로 향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집안일을 모두 끝내야지. 그러고 보니 내일 회사에 가져갈 도시락도 싸야 한다. 내일 또 만드는 건 귀찮으니까 이틀 치를 만들어두어야지. 작업실에서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게 귀찮아져서 분명히 안 만들 거니까 지금 만들어야만 한다. 어제 귀찮았으니 오늘 부지런해야 하고, 또 내일 귀찮을 테니 오늘 부지런해야지. 라면을 후다닥 먹고 채소와 계란을 볶아 한소끔 식혀두고 샤워를 하며 화장실 청소를 했다. 아, 귀찮아. 작업실 가는 것도 귀찮아. 컴퓨터를 왜 작업실로 가져다 놔서. 하지만 집에 컴퓨터가 있었다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던져둔 채 침대에만 누워있었겠지. 작업실까지 가는 길도 멀어서 무척이나 귀찮지만 샤워를 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무조건 가는 수밖에. 씻은 게 아까워서 이제는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작업실로 와서 집중하기 좋은 노래를 틀어놓고 이 글을 쓴다. 평일 루틴에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넣어버릴까 고민하며. 그리곤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게을러서 안 할 테니까. 그냥 미뤄뒀다가 이렇게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삶을 계속 살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주말엔 하니까, 하는 합리화를 한다.



  귀찮아. 집안일도.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놀고만 싶어.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자고 가끔 눈을 떠서 유튜브를 보고 싶어. 하지만 또 그렇게 살긴 싫어. 그래서 지금도 이 글을 쓴다. 내일도 귀찮다는 말만 뇌에 가득 채운 채 하루를 보낼 테다. 그러고선 갓생 브이로그를 보며 또 열심히 살 궁리를 하겠지. 스스로 짜둔 루틴을 지키려고 틈틈이 할 일을 하고. 아, 귀찮아. 그래도 내일부턴 지난주보단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아볼까. 하등 의미 없는 다짐을 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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