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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회랑

by 노페라보 Mar 21. 2025

그곳에 첫걸음을 디뎠을 때

그는 그것을 만남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멈칫하며 어색해했다.

문설주를 지나 문지방에 앉았을 때

그의 맨발을 곁눈질했고 

그곳에 푸른 굳은살이 있음을 보았다. 

부엌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사그라들 때쯤 

처음으로 두 눈을 마주쳤고 

채 걸음마를 때기 전에 우리는 이미 두 손을 포개었다.

대청마루를 지나 건너방을 훑고 

텃마루에서 첫눈에 발자욱을 듣기까지

젖은 보폭이 재가 되도록 기뻐 잰걸음을 맞추곤 했었다.

허나…

다락방에 올라 서까래에 대일 때만 해도 

고작 몇 걸음 앞선 정도였고

대들보에 서서 밧줄에 탈듯하자 

비로소 접점 없는 무한회랑을 걷고 있음이 눈시울에 젖는다.

나는 애타게 노래 부른다. 

“이보~ 이보~” 

그는 ‘우리’란 그저 시간에 녹아들 뿐이라며 성가시다는 듯 해명할 것이다.

“아니~, 아니~”

서로가 시간에 녹아든다는 생각 그 자체가 

생각이 시간에 녹아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할 뿐

진짜 우리는 빙하처럼 단단하다고…

허나…

저것은 대답 없이 걸음만 재촉하고 있고 

이것은 그 속에서 하나의 계기 짓는 사건이 되어 

그 자체 속에서 영원한 통일체를 향해 한없이 연장될 것임을 안다.

그래, 

그것은 오늘도 무한회랑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고

지금 나는 상대적으로 뒤쳐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내일 나는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위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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