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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무 2 (완결)

치매와 노화

by 은림


뽀오오…


물이 알맞게 끓었다는 주전자의 고음은 나를 회상에서 끄집어내었다. 파란 테를 두른 잔에 담긴 인스턴트커피에 물을 부었다. 곧 싸아하게 집안 가득히 깔끔한 커피 향이 감겨들었다. 그 다갈색 연기 틈새로 나는 다시 옛 기억을 더듬어 들어갔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무척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혜야 엄마는… 지금 너한테 그걸 이해시킬 만큼 힘이 남아 있지 않단다. 나무가 되는 건 아주 특별한 거야. 문지방 얘길 기억하니? 엄마는 문지방이 되는 거란다. 지혜 곁에 남아서 아빠도 만나고 싶은 거야. 죽는 것과 나무가 되는 건 같을 지도 몰라, 네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하지만… 나중에……」

어머니는 호흡이 가쁜 듯이 숨을 헐떡였다.


「잘 생각해보렴. 둘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거란다. 완전히 멈추어 버리는 것과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건 다른 거야.」


어머니는 한꺼번에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지쳐 잠드셨다. 그리고 나는 큰 이모한테 어머니를 너무 피로하게 했다고 야단맞았다. 어머니는 큰 이모보다 어린데 큰 이모보다 빨리 나무가 되었다. 큰 이모는 그것에 못내 서운하신 듯했지만 나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계시지는 않는 듯했다. 큰 이모는 결국 나무가 되지 않고 어느 산자락 나무 아래 묻히 셨다. 그리고 그분이 그걸 몹시 서운해 한 기억이 남아 있다.


“후….”


두 손 깊숙이 잔을 감싸 쥐고 길게 뜨거운 김을 한번 불었다.

나무가 된다는 건 죽음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나는 그때에 이미 인식해 버렸다. ‘인식한다’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한번 ‘어떤 것’이라 인식해 버린 것은 ‘다른 것’으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또 그렇게 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보통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에겐 나무가 되는 것과 죽음은 같은 단어였다.


어느새 그것이 거부감보다는 유용하다는 생각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처럼 사고에 비명횡사가 많은 때에 죽을 시간을 알고 준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그럴싸한 일인가? 게다가 요즘 들어 더욱 외박이 잦은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무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이 훨씬 덜 지루하고 외로움도 덜 수 있었다.

외로울 때 손 닿을 것이 없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는 나무가 되는 것이 났다.


때르르…


무선 전화기를 쓰고 어디다 두었지? 나는 소리가 울리는 곳을 찾아 한참 헤맸다. 치매는 나무가 되는 시작이다.


“엄마?”


전화기에서는 왜 이제야 받았냐는 듯 다급하게 채찍질하는 막내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응, 웬일이니? 오늘 네 언니하고 같이 온다고 하잖았어?”


“엄마, 문제가 생겼어. 좀 나올래? 준비하는데 오래 걸려? 내가 집 앞으로 차 가지고 갈게.”


딸애의 음성이 심상치 않다.


“그래, 빨리 준비할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더 지체될 것 같아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불안하고 마음이 조급했다. 무슨 일이지? 막내의 그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큰 애는 제 또래답지 않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나를 당황케 했고, 둘째는 그런대로 제 주변에 맞게 움직여서 별 신경이 가지 않았지만 막내는 예술을 한답시고 호방하고 간이 큰(내가 보기엔), 자기 말로는 자신감 있고 당당한 성격이었다.

그 애가 무엇에 놀라거나 당황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열아홉 살에 ‘남편 될 사람이에요’하고 웬 시커먼 사내 녀석을 인사시키더니 내가 맘에 안 든다는 눈치를 보이기도 전에 ‘엄마, 내 뱃속에 손녀도 있어’라는 충격 발언으로 내 혼을 쏙 빼놓았던 것이다. 물론 딸애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애써서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반쯤 식물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애를 받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결혼은 깨졌다. 애초부터 진지한 결혼은 아니었다고 막내는 말했다. 게다가 남자는 처음부터 ‘나무 이야기’를 전혀 믿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일로 종종 마음이 아팠다.


빵빵-.


서둘러 화장을 마치고 신을 신는데 골목 어귀에서 낯익은 엔진 소리와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벌써 도착했나 보다.


“나간다.”


저만치 골목이고 차 안이니 들릴 리도 없지만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지른 다음 손가방을 달랑 집어 들었다. 마침 뚜껑 닿는 것을 잊었는지 모서리가 쏠리면서 가방 안에 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마음도 급한데 너무 당황해서 립스틱과 콤팩트, 동전 지갑 등을 주섬주섬 챙겨 넣는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엄마-?!”


바로 현관 밖에서 막내의 의아함과 재촉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간다. 무슨 일이니?”


나는 손가방 안에 무엇을 제대로 집어넣었는지 확인해 볼 세도 없이 반쯤 신을 구겨 신고는 달려 나갔다.


“엄마, 평택에 외할머니 집 있잖아. 거기 철거한데. 나 오늘 아침에 들었어.”


“철거라니?”


거기에 할머니 나무가 있는데! 나는 철렁한 가슴을 끌어안았다. 나잇살이나 먹은 에미라는 것이 자식 앞에서 흔들림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딸애가 거드는 대로 뒷좌석에 올라탄 나는 긴 한숨으로 떨림을 무마했다. 차 안에는 이미 큰 애가 앉아 있었고, 앞 조수석에는 회사 일을 하다 급히 뛰어나왔는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친 둘째 애가 앉아 있었다.


“엄마, 아버지 핸드폰 두고 가셨어요? 오늘 하루 종일 해도 연락이 안돼.”


“핸드폰? 가지고 나가신 거 같던데?”


“큰 누나가 그럼 계속 연락해 보고, 희연인 국도로 빠져. 주말이라 고속도로 막힌대.”


“알았어, 오빠.”


막내는 야무지게 기어를 잡아당기고 핸들을 돌렸다. 한남대교를 타고 수원으로 빠지는 국도를 달리면서 나는 불안감이 거의 머리끝까지 차 올라 있었다. 철거를 한다니…!

할머니 나무는 괜찮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무렵에 엎친대 덮친 격으로 가세가 기울어 급히 그 집을 팔게 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엉뚱하게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할머니 나무 옆 그 뒤뜰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묻힌 야산 머리에 서셨다. 나는 어머니의 아쉬움은 그대로 이어받아 남이 것이 되어 버린 그 옛집을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웬 갑작스러운 철거라니?”


“아파트를 짓느라 그 일대를 밀어 버린대. 왜, 음봉 쪽에 공장 단지 들어섰잖소. 거기에 발맞추려는 기센 가봐.”


“음봉에 공장? 그게 들어선 지가 언젠대.”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행여나, 그 옛 집이 그렇게 사라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자기가 살던 곳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거란 상상을 도대체 누가 해 본단 말인가? ‘마음의 고향’이란, 말처럼 언제나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곳, 꿈에 그리던 모습으로 반겨 줄 안식처였다. 그런 것이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는 끔찍한 예상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요즘같이 세상 정신없이 돌아가는 때에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던 이들이, 그 변모한 모습을 보고 마음 따뜻한 안식 대신 가슴에 허한 모래 먼지 더미를 쌓아 가는 것은 어쩜 너무도 당연했다.


“엄마, 청심환.”


내 파리한 안색이 눈에 띄었는지 큰 애는 이럴 줄 알았다며 핸드백에서 자그마한 원통을 꺼냈다. 애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사실도 부끄러웠지만 원통을 청심환이라고 건네받아서 나는 한참을 얼굴 붉히며 헤맸다.


“엄마는, 요즘은 마시는 걸로 나온다고. 씹어 드시면 체하실까 봐 이걸로 골랐는데.”


세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없이 변하고 있었다. 큰 애는 직접 작은 뚜껑을 따서 다시 건넸다. 나는 잠자코 그것을 받아 마셨다. 등허리가 어느새 축축한 땀으로 젖어 있었다. 더듬더듬 손가방 안을 뒤져 손수건을 꺼내려는데, 가방 안에서 검은 것이 딸려 나와 시트 위를 굴렀다.


툭 두르르…


두리뭉실한 그것을 가만히 보니, 손수건이 아니라 요전에 걸레로 쓰고 현관에 처박아 두었던 빨지 않은 양말이었다. 당혹감과 난처함에 얼굴이 귀밑까지 달아올랐다. 그때 슬그머니 하얀 휴지를 쥔 손이 다가오더니 시커멓고 냄새나는 그것은 조용히 큰 애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새삼스레 큰 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전이라면 건망증이라고 한창 창피를 주었을 것을 짐짓 모른 척 옆 창으로 눈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웃음이 났다. 약 기운 때문인지 큰아이의 어른스런 마음 씀씀이 때문인지 불안은 많이 가라앉고 있었다.


“니 아버지한텐 연락 아직 안 되니? 그 양반은 땅 사놓고 나선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다고 얼굴도 보기 힘들 테니. 이럴 줄 알았다면 돈 모았을 때 안국동에 그 땅 사지 말고 그 집이나 다시 살 걸….”


나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나의 당혹스러움과 절망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애들은 벌써 그런 것쯤은 너그럽게 이해해 줄 성인이었다. 그런 중요한 것을 잊다니! 이건 가히 치매라 불릴 만한 망각 증상이었다. 당신은 다섯 살짜리 어린 딸마저 어른의 인격으로 대우해 주셨는데 나는 벌써 자기애를 하나 이상씩 낳은 내 자식들조차 성인으로 대우해주지 못한 것이다.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중히 하던 할머니의 외갓집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가 소식이 들리자 눈앞의 일을 다 물리고 셋이서 합심해 제까닥 제 엄마를 모시러 나왔을 정도로 마음도 훌쩍 자란 내 아이들.


문득, 치매로 잊은 것이 가벼운 일상의 외로움뿐만이 아니라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자그마한 편안함으로 도피해 정말 중요한 것마저 잃고 있는 거 같다.


“후…”

뒷일이야 어찌 됐든 우선 애들 손에 상황을 맡겨 보리라 맘먹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편안하진 않지만 심장을 조이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엄마, 여기서 우회전이던가? 아이참, 하도 오랜만이라 기억이 나질 않네.”


막내는 갈림길에서 내 도움을 청했다. 나는 앞 좌석 쪽으로 몸을 조금 내밀어 자신 있게 길을 안내했다.


“아무리 오랜만이라도 길을 잃어버리니?”


“어머, 맞아. 이 길이었지. 엄마가 나보다 낫다니깐.”


요새 들어 더 심해진 치매에 기가 죽은 내 기분을 살려 주려는 입에 발린 칭찬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정말 할머니 나무가 위험한 순간만 아니라면 이 시간은 느긋하게 행복을 즐길 가족 간의 단란한 한 때였다. 아니 이 사건이 오랜만에 가족을 모이게 한 건지도 모르지.


여러 가지 증명 스티커로 얼룩진 앞 차장 너머로 저쪽 어귀에 드문드문 늘어진 집과 담벼락이 보인다. 그곳에서부턴 차가 다닐 만큼 길이 넓지 않아 내려서 걸어야 했다. 막 차 문을 열고 나서는데 둘째가 ‘잠깐’이라고 말리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금방 골목 틈새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돌아왔다. 그리고 앞 좌석에 타자마자 차를 돌리라고 했다.


“왜 그러니?”


“보실 것 없어요, 엄마. 서울로 가자.”


가슴에 찰랑이던 불안감이 섬뜩하게 떨어졌다. 나는 말리는 큰 애를 떨치고 차 밖으로 나가 길 어귀를 돌았다. 그리고 순간 더 나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 버렸다. 더 나아가 옛집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곳은 숨어 쉴 구석 없어 지친 황량한 먼지바람만 풀풀 휘젓고 다니는 허허벌판이었다. 골목 모서리부터 칼처럼 잘라 만들어진 공터라서 마치 깜짝쇼를 보는 기분이었다.


“엄마?”


걱정스런 막내의 목소리가 한동안 멍하니 섰던 나를 불렀다.


“한 달 전에… 밀렸대.”


막내는 음성엔 미처 알지 못해 죄스럽다는 마음이 강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딸애와 나란히 걸었다.


“엄마… 괜찮아?”


“애는, 괜찮지 않고, 뭐 별일이라고.”


차로 돌아왔을 때는 작은 애가 큰 애의 핸드폰을 받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어진 선이 없는 공간 저쪽은 남편인 모양이었다.


“예, 알았어요. 엄마 지금 함께 계세요. 바로 그리로 올라갈게요. 아마 한 시간쯤 걸릴 거예요.”


작은 애는 간단한 용건으로 핸드폰 뚜껑을 닫고는 핸들을 잡은 막내에게 말할 겸 우리 모두에게 목적지를 들려주었다.


“안국동으로 가자. 아버지 지금 거기 계시대.”


“거기 집 다 지으려면 한 달은 남았다더니 그 양반 왜 거기 가 계시대냐?”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목소리에는 기운 없는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막내와 작은 애는 말이 없는데 큰 애가 자상하게 대꾸했다.


“올라가 봐야 알죠. 고속도로로 가자, 차 없더라.”


막내는 부드러운 출발로 큰 애의 말에 대꾸했다. 주말이라 서울로 가는 길은 한산하다 못해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나이답게 않게 속도를 즐기는 제 어미를 위해 막내는 한창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만, 나는 울적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그 나는 듯한 스릴도 즐길 수가 없었다.


“엄마, 다리는 좀 어때요? 나무가 되면 다리 근육부터 말라붙기 시작한다는데….”


문득 돌아보는 작은 애의 시선에서 다리를 숨기느라 나는 황급히 긴치마를 더욱 길게 잡아끌었다.


“그냥 그렇지 뭐.”


아이들의 걱정은 당연스런 것일 텐데도 오랜만의 시선이 걱정 어린 관심이라기 보단 타자의 흥미로 느껴져서 나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내 지나친 생각일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과감히 떨쳐 버리려 머리를 한번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모인 것도 참 오랜만이네. 언니랑 나는 집이 멀다 치고 가까운 오빠는 요즘 뭐 하는 거야?”


“일이 바빴다고, 일.”


“헹, 늘 그 일 이야기지. 일은 누군들 안 해? 가끔 엄마를 좀 기쁘게 해 드리라구. 다른 거 있어? 얼굴이나 좀 잘 보여 드리면 되지.”


차안의 분위기를 바꾸려 막내가 작은 애한테 앙살을 떤다. 그래도 나는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문득, 서늘하게 손을 덮어 오는 낯선 체온을 느꼈다. 큰 애의 손이었다. 어려서도 찬 손은 나이가 들어도 쉬이 따뜻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앞 좌석에서 동생들이 한창 입씨름이 붙은 사이 큰 애가 말했다.


“엄마, 있잖아. 엄마가 열심히 착하게 잘 살아오긴 했나 봐. 전에 그랬잖아. 착하고 얌전하게 굴면 할머니가 선물도 주실 거라구. 할머니 나무 말이야…. 돌아가시면서도 선물 남겨 주신 게 아닐까? 우리 가족, 다들 결혼하고 독립하고 나서는 이렇게 함께 나온 적 없잖아.”


큰 애의 조용한 음성에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래, 현재가 중요한 것이지. 그걸로 서운함을 모두 메울 수야 없지만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야 기분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큰 누나는 역시 현명해, 나무가 될 자격이 있다니까. 나는 뭐야? 사내애는 안 된다고 누가 정한 거지?”


앞좌석에 앉아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작은 애가 너스레를 떤다. 나는 피식 웃었다. 작은 애의 말처럼 나무가 되는 건 외가의 피를 이은 딸들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막내가 낳은 애도 하체가 거의 식물의 형상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무가 된 걸 보니 그 애도 분명히 손녀였을 거다.


“좀 막히네?”


양재 인터체인지를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 3호 터널에서 명동으로 건너가는 중에 차가 좀 많았다.


띠 띠리리리…


“네. 윤 수영입니다.”


큰 애가 차분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사위의 커다랗고 호쾌한 목소리가 어깨너머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예? 아, 그래요? 음, 엄마랑 가고 있어요. 그럴까…? 에! 정말?”


큰 애의 음성에 문득 화색이 느껴져서 얼굴을 보았더니 얼른 창으로 고개를 돌려 내 눈을 피했다.


“음, 한 10분이면 도착할 거래요. 거기서 봐요.”


“누나네 부부는 아직 신혼이야?”


간드러진 큰 애의 음성에 작은 애가 돌아보며 닭살 돋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빠는 금슬 좋은 것도 질투하우?”


막내는 일본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차를 세웠다.


“엄마 모시고 먼저 들어가, 나 근처에 주차할 때 있나 알아보고 갈게.”


“그래라.”


작은 애가 먼저 내려 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신사처럼 우아하게 폼을 잡길래 그것에 맞장구 쳐주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망할 거란 상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나는 몹시 유쾌해졌다. 할머니 나무를 잊은 것은 아니다. 큰 애처럼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자기 최면이나 자기 합리라고 불러도 좋다. 평택에 그 집은 아직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할머니 나무는 그 옛 기억 속에서 아직도 진한 초록색으로 고스란히 늙어 가고 있을 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 나무가 있는 곳은 몇십 킬로미터 밖의 평택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아버지!”


성큼성큼 한 걸음으로 나서던 작은애가 먼저 남편을 발견했다. 흰머리가 희끗 하지만 아직 반듯한 쉰넷의 내 남편은 온화한 표정으로 아들의 인사를 받으며 다가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평택에 갔었다며.”


낯간지러운 다른 어떤 위로 말도 필요 없이 그 손길은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남편 품에서 와락 울고 싶었다. 늙었어도, 우리는 부부였고, 그전에는 서로를 보듬어 줄 연인이었다. 나는 잠시 그 어깨에 한숨을 묻은 후 곧 남편과 떨어졌다. 서로 남의눈을 의식하는 성격이 아니라 불편하게 구경하는 시선은 둘째 치더라도 주위 경관이 좀 달랐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내 내 속내를 눈치채고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공사가 좀 빨리 끝났어. 여기가 20년 만의 처음 우리 집이라고, 아직 내부 장식이 덜 끝났지만……. 당신, 들어와 보지 않겠어?”


부드럽게 느껴지는 남편의 음성은 어떤 장난스러운 기대가 배어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들떠 오르는 가슴을 느꼈다. 마치 형제들 틈에 끼어 살다가 자기만의 독방을 얻는 어린애 같은 기분이었다. 온전히 내 것인 나만의 공간을 얻은 풍족하고 자유로운 느낌.


드렁.


새 칠한 대문은 기름이라도 먹인 듯이 매끄럽게 열렸다. 나는 그 말없는 환영을 받으며 눈앞에 펼쳐진 잔디밭 사이에 놓인 색색 징검돌을 디뎠다. 남편은 한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휑한 부지만 보았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마당과 집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훨씬 넓고 아늑했다. 인사동과 이어진 주위와 어우러지느라 양옥집인데도 처마 위엔 기와가 얹혀 있었다. 나는 집의 독특한 외관보다 오른쪽으로 돌게 되어 있는 정원에 더욱 마음이 갔다. 정원이라 부르기엔 좀 협소한 감이 없잖았지만 듬성듬성 채워진 나무그루들은 그 아쉬움을 접어주고도 남을 만큼 정겨웠다. 역시, 동질감일까?

“해민 아빠….”


뒤에 남은 큰 애는 사위와 만나고 있는 듯했다. 그네들이 뒤늦게 도착한 막내와 합세해 조용히 눈짓을 나누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유선형으로 꺾여 뒷랑으로 이어지는 정원 틈을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뜰에는 장독을 둬도 될 거 같더군. 거기, 할머니 나무 옆에 말이야.”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남편의 말로 멍멍해져 있긴 했지만 그전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기적에 한참 동안 멍하니 사로 잡혔다. 장독을 위해 일부러 비운 듯한 공간 옆에 낯익은 검은 나무가 서 있었다. 앉은뱅이처럼 40년째 어른 키만 간신히 넘고 있는 잎이 푸른 밤나무, 등이 굽은 우리 할머니였다.


“수영 아빠….”


나는 넘어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를 안아 주었다. 덕분에 마음 놓고 눈물을 끌어낼 수 있었다. 여기는 우리 뒷마당이고, 나의 할머니 나무와 너무 소중한 내 남편이 있는 우리 집이었다.


“평택에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는 두 달 전부터 들어왔어. 왔다 갔다 했는데… 도저히 집 공사도 끝날 때까지 거기가 밀리지 않을 보장이 없어서 우선 뽑아다 조경원에 맡겼지. 잘 신경 써 주나 일주일에 두 번씩은 가 봐야 했었고…….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쇠약해지실 거 같아서. 여기 모신 지는 사흘밖에 안 됐어.”


울음을 삼키는 내 등을 토닥이며 남편은 변명처럼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변명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 긴 과정으로 들렸다.


“어쩜…. 애들한테도 말 안 했어요?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 안 했어.”


나는 큰 애의 청심환과 세심한 배려를 기억해 냈다. 아버지가 말 안 했어도 그 애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막내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 와락 목에 매달렸다.


“에구 깜짝이야. 다 큰 애가….”


나는 민망해하면서도 막내딸의 포옹을 거부하지 않았다.


“엄마는….”


막내는 어린애처럼 앙살하며 가벼운 핀잔에도 늙은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처럼 크고 든든하진 않았지만 딸애의 팔은 분명 좀 더 부드럽고 포근했다. 이 느낌이 얼마 만인지 코끝이 시큼한 기분마저 든다.


“어머니, 늦어서 죄송해요.”


앞마당에는 사위와 큰 애, 작은 애, 며늘 애까지 모두가 모여 있었다. 손주를 유치원에서 찾아오느라 조금 늦었다고 말하는 며늘 애의 입술 끝에는 언제나와 같은 자상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이제 막 미운 나이가 되어 가는 손주를 품에 안으며 불현듯 깨달았다. 모든 것이, 실은 아주 가깝게 있었다는 것을. 혼자만의 생각에 지나쳐 포기하려 했던 ‘행복’들은 이렇게 색도 바래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것들에 잊힌 것이 내가 아니라, 그것을 잊은 것이 나였다. 새삼스레 되찾은 할머니 나무처럼.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의 나는 나무가 되는 것을 어떤 형벌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 스스로 불러들이신 징벌. 그래서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 그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원하는 대로의 ‘외로움을 잊는 징벌’이라면 나무가 되는 것보다 죽는 편이 훨씬 더 어울렸을 것이다. 죽음만이 온전히 세상 모든 것과 손을 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되는 것으로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귀가 멎고, 몸이 시간에 굳어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는 죽음처럼 멈추어 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는 느낌표로 살아 세상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을 이제야 이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잊으려는 생각에 나무가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나를 한꺼번에 느끼고 싶으셨기 때문에 나무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정말 근사한 욕심쟁이였다.


“벌써부터 나무가 될 필요는 없잖소.”


옆에서 큰 애가 내 속을 짐작한 듯 어깨를 두드린다.


“조금 느긋하게 노년기를 즐기시라고요.”


서른을 갓 넘긴 그 애의 눈은 피폐해져 가시 돋친 제 어미의 마음까지 부드럽게 보듬어 줄 정도로 깊었다. 역시 이 애는 너무 철이 빨리 들었다. 나보다도 훨씬 어머니를 빼닮은 게 큰 애다.


“장모님, 오랜만에 함께 외식이나 하시죠? 근처에 잘하는 고깃집 아는데…”


“자네가 낼 건가?”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능글능글한 웃음을 보였다. 사위는 ‘역시 우리 장모님’이라는 식의 너스레를 떨어 나에게 맞장구쳤다. 나는 얌전한 큰 애를 잘 보필해 줄 큰 사위의 성격을 처음부터 무척 맘에 들어했었다.

이제 나는 한동안 나무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이 아주 특별한 축복이라는 걸 알지만, 큰 애의 말처럼 너무 빨리 나무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 세상엔 내가 사람으로서 즐거울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걸 다 쓰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얻어도 누구도 탓하지 않을 거다. 세상 사는데 죽을 때까지 온전히 내 것인 것은 시간밖에 없을 테니까.


“잠깐만….”


달칵.


나는 눈물 자국을 지우려 콤팩트를 꺼내다가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부러진 구둣솔을 보고 웃어 버렸다.

세상에,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2025년. 나는 이 글의 주인공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내가 상상했던 과거의 어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아직 할머니가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아픈 곳은 많지만 여전히 작품활동과 돈벌이와 집안일과 육아를 하고 있다.

근사한 미래에 도착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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