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우리 반 계주로 뽑혔어!!"
그날, 그 순간 나는 정말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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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때 항상 반장이었다.
학교 대표로 수학영재대회도 나가면서,
동시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글쓰기 상도 받던 아이였다.
그런 내가 죽도록 못하는 것은 운동, 체육, 움직이는 활동 모든 것.
그런 나의 아들이 용케도 아빠를 빼닮아
4월에 열리는 운동회에 반 남자대표로 뽑힌 것이다.
반에서 달리기 1등이란 소리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 둘 다 운동신경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계주는 남다른 의미였다.
병아리 같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동네엄마들은 '적응'에 신경 쓰고 있을 때였다.
내 아들은 계주가 되어 운동장을 날아다닌다니.
이 사실은 학교에 완벽히 '적응'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운동회의 꽃, 이어달리기를 완성시키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학교 운동장 모래 위에서.
두 눈 부릅뜨고 경쟁심에 내달리는 큰 아들을 보며
나는 쓰러질 것 같은 희열 그 자체를 느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체육시간 내내 움츠러져 있던 내 모습.
달리기 하면 항상 놀림감이 되던 내 모든 시간들.
뜀틀이 너무나 높아 중간에 걸터앉지도 못한 두려움들.
체육시간이 되면 항상 생리통 핑계를 대고 싶었던 소극적인 마음들.
그 모든 37년을
8살 아들이 하루 만에 통쾌하게 날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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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키우다 보면 운동선수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계주가 된 후로 그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좋은 운동신경을 물려준 장본인인 남편은 시큰둥해했다.
"내 아들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물론 나도 그 정도가 아니어서 운동을 안 했고."
나는 왜 자라나는 새싹의 기를 죽이냐며 팔짝 뛰었다.
"당신도 하지 그랬어. 어쨌든 당신은 당신이 안 한 거잖아. 내 아들은 다르다고!"
첫째 아들은 순하고 착하지만
고집이 세고, 대쪽 같은 면이 있다.
6살 때 유치원을 다녀와서는 눈하나 깜짝이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oo태권도를 다닐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그 뒤로 계속 태권도를 다니는 중이다.
겨루기 대회에 본인이 나간다고 해서, 두 번 대회에 내보냈다.
처음 대회를 나갔을 때, 품새 하는 건 봤지만 겨루기를 보는 건 처음이라 온 가족이 긴장했다.
가슴을 졸이며 내 아들이 맞는 걸 지켜봤다.
첫 상대와의 3판 중 2판을 이겼고, 그다음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모두 졌다.
참가의 의미가 있는 은메달을 받았다.
두 번째 대회는 몇 달 뒤였다.
얼굴을 알고 있는 아들 친구 녀석들이 먼저 경기를 했다.
다리가 어찌나 높이 뻗어지는지 상대의 얼굴을 가볍게 가격해서 점수를 따냈다.
기다리던 나의 아들 차례가 되자 나는 너무 긴장되었다.
몇 달 동안 얼마나 성장했을지, 친구들보다 얼마나 잘할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와.... 저게 뭐지..."
경기가 시작되고 나는 얼어붙었다.
태권도는 잘 모르지만, 그런 내 눈에도 아들이 정말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발차기도 못하고, 방어도 못하고, 공격은 더 못하고.
어째 첫 겨루기 시합 때보다 훨씬 더 못했진 걸까.
시작한 지 1분도 안돼서 질 게 뻔히 보였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 말없이 남편을 바라보았고,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봐봐. 아니라니깐."
아침 일찍 준비해서 온 가족이 출동해서 간 대회.
주차할 자리도 없고, 정신없이 북적거리는 틈에 둘째 아들은 지루해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별거 아닌 초등학생들 경기를 보며, 실망감에 가슴이 정말 먹먹해졌다.
머리가 멍해서 귀가 윙윙 거렸다.
그날 아들은 완전히 졌다.
남편과 나는 애써 마음을 잘 숨겼다.
"잘했어! 잘 싸웠어!" 응원의 말을 해 준 뒤,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정신이 멍해져 밥도 먹히지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나는 운동을 잘하지도 않으면서, 왜 아들에게 운동 욕심을 부리는 걸까?
다른 아이들은 반짝거리며 성장하였을 때,
왜 내 아들은 반짝거리지 않는 걸까?
몇백 명이 모인 오늘 대회에서 제일 잘한다 쳐도,
국가대표가 될까 말까 일 텐데...
태권도는 영 소질이 없구나.
나는 여태까지 모자란 것, 부족할 것 없었던
훌륭한 내 아들에게서
[태권도]란 항목 하나를 지웠다.
내 자식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고,
지워내기가 이상하리만치 힘이 들었다.
그건 아이를 여덟 해 동안 키워내면서 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집에 와서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래도 빨리 알아서 다행이지. 모르고 계속 욕심부리며 시킬 수도 있어.
태권도는 그냥 취미로 해. 운동 하나 계속 배우면 좋지 뭘 그래."
나는 그날 자려고 눕자 온갖 생각들이 쏟아졌다.
아들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나니
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 발레, 바둑, 컴퓨터 등
많은 학원을 다녔다.
내가 커가는 동안 우리 엄마는 나에게서 몇 개의 항목을 지워냈을까?
하나씩 지워내며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기에,
그림 하나만은 반짝였다 치자.
그래서 결국 지금의 나는 그림으로 무엇을 이뤘나.
나의 부모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며,
얼마만큼의 환희와 또 얼마만큼의 좌절을 맛보았을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결국엔 '그래 재능이 다 뭐냐. 행복한 게 장땡이지.'라는
얼렁뚱땅 식 결론을 황급히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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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겨울방학이 되고 첫째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oo탁구장에 다닐 거야."
탁구를 몇 달 배웠지만, 탁구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실력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여름휴가 간 리조트에 탁구장이 있었다.
"관장님이 나 잘한다고 하셨어."라는 자신감과 함께 첫째 아들은 탁구채를 잡았다.
나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과연...'
한 시간 동안 우리 가족 네 명은 번갈아 가며 탁구를 쳤다.
리조트 방으로 올라와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들들은 핸드폰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남편 옆에 누워 말했다.
"정말 너무 슬프다."
남편이 말했다.
"나도 정말 슬프다."
우리는 그날 [탁구]란 항목도 지웠다.
두 번째는 한결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