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斜角)

나무와 나 사이의 온도

by 나무를만지는


아직은 견딜 만한 날씨라 마당 한켠에 밀어둔 화로에 불을 붙였다. 군불이 번지는 동안, 손에 익은 조각칼을 천천히 쥐어 본다. 화롯불 앞에 앉아 나무를 깎는 이 순간은, 어릴 적부터 꿈꾸어 오던 장면 그대로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소망이 나무 결을 따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 일이 아직도 ‘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오래전부터 상상해 온 겨울 풍경 안에서 손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미라 부르던 게 어느새 생업이 되었고,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바람 끝에서 스산하게 묻혀 오는 한기의 숨결도, 손끝을 스치는 나무의 까슬함도, 지금은 그저 나를 이 자리에 머물게 하는 풍경일 뿐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참 묘하다. 사람을 집 안으로 몰아넣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더 자주 밖으로 나온다. 이른 새벽부터 얼어붙은 마당을 가로질러 작업실로 향하고, 해가 중천에 뜨는 시간에는 화로 앞에 다시 자리를 잡는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천천히 겹쳐지며 불빛이 흔들리고, 그사이 나는 마음속 오래된 꿈의 온도를 한 번 더 확인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어떤 형태로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는 걸까. 나무가 깎여 모양을 갖춰가듯, 나도 조금씩 다른 모양을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차디찬 공기가 감싸고돌아도, 묵은 향의 나무 냄새가 스며들면 금세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불이 점점 잦아들고, 밤이 깊어질수록 작업대 위에는 또 다른 겨울의 흔적이 쌓인다. 잘라낸 나뭇결 조각들, 따뜻했다가 사그라드는 불씨, 그리고 오늘 하루 묵묵히 쌓아 올린 시간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낮의 취미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래된 꿈의 모서리를 다듬어 가는 겨울밤이다. 이 계절을 지나 다음 계절이 올 때쯤이면, 어쩌면 또 다른 나를 손끝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