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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출신의 인사담당자로 산다는 것

국문학, 전공 불일치, 성장

by 문장담당자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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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출신의 인사담당자로 산다는 것"


“국어국문학과 나와서 인사팀 해요?”

나는 이 질문을 꽤 자주 듣는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렸다.
국문학과가 왜 인사를 하면 안 되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국문학을 공부했던 그 시절의 나는 ‘조직’, ‘성과’, ‘보상’, ‘평가’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때 나는 문장을 곱씹고, 시를 외우고, 시대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채용을 기획하고, 제도를 설계하며, 한 사람의 성과를 숫자로 환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쩌다 이 길로 왔을까?
그리고 왜 아직도 이 길에 남아 있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국문과는 ‘길’이 아니라 ‘시작점’이었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고 고전문학 석사과정까지 진학했었다.
조선시대의 국문장편소설을 공부하고 그 시대의 작품에서 인간의 내면을 읽어내던 시절이었다.

그땐 인사제도나 노동법 같은 단어는 머릿속에 없었다.

내가 꿈꿨던 건 글을 쓰거나,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지 않았고, 나는 방황 끝에 다시 ‘취업’이라는 단어 앞에 섰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 물음 끝에 떠오른 건 의외로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의 말을 오래 기억하고, 그 말 뒤의 감정을 읽는 데 익숙했다.

그건 문학이 내게 준 훈련이었다.
비문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감각, 상징 너머에 숨겨진 감정을 짐작하는 능력. 나는 그걸 인사팀에서 쓰기 시작했다.


인사 실무와 문학 감수성은 닮은 점이 많다

누군가는 HR을 ‘숫자 싸움’이라고 한다.
성과지표, KPI, 평가등급, 보상산식…
맞다.

인사에는 분명 냉정한 계산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계산 뒤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나는 코멘트를 쓸 때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를 떠올린다.
보고서 너머로 보였던 표정, 회의 시간에 조심스레 꺼낸 질문들.

그리고 문장을 쓴다.
“성과는 다소 아쉬웠지만, 진심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다음 기회엔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하며 충분히 애쓴 1년을 응원합니다.”

그 한 줄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지 나는 매번 오래 고민한다.

그건 평가가 아니라 문학의 언어다.
짧지만 정직한 말, 사람을 존중하는 문장.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국문학 전공자로서 내가 HR에서 빛날 수 있었던 이유다.


전공은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손에 잡힌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땐 국문학 전공이 부끄럽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경영학, 심리학, 산업공학 같은 ‘전공자’들이었고 나는 마치 엉뚱한 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전공은 결국 나의 언어가 된다.

문서를 검토할 때 나는 먼저 문장의 흐름을 본다.
회의에서 논의가 꼬이면 맥락을 풀어 말하는 걸 맡는다.
회사 행사엔 글을 쓰고, 안내문을 정리하고, 리더의 메시지를 정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국문학이 내게 준 힘이었다.

요즘은 오히려 “보고서 쓸 땐 문과 출신이 최고예요.”라는 말도 듣는다.


전공과 직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요즘 채용 시장은 전공보다 ‘직무 적합성’을 먼저 본다.
학부 전공보다 인턴 경험, 프로젝트 수행력 그리고 면접에서 드러나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변화 속에서 문과 출신, 비전공자는 언어적 설득력과 정서적 감각으로 승부해야 한다.

나는 국문과 출신으로서 “문과가 어떻게 회사에서 살아남는가”를 매일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렇다.

“문과는 오래 생각할 줄 알고, 오래 기다릴 줄 알고, 오래 남을 말을 쓸 줄 안다. 그건 회사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힘이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인사담당자로 산다는 것.
그건 매일 내 전공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국문학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일과 글과 사람 사이에 계속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퇴근 후 문장을 쓰며 나를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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