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 되기 전부터 HJ를 알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면 종종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리던 HJ를 볼 수 있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인가 보네.’
해가 바뀌었다. 우리는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학기 초 어느 날 HJ이는 부러진 연필을 들고 와 말했다.
“선생님 무서워서 연필을 못 깎겠어요.”
“연필깎이가?”
HJ이는 연필깎이를 집어넣을 때 손을 다칠 것 같다고 했다. 연필을 고정시킬 때 나는 ‘탁’ 소리도 무섭다고 했다. 나는 소음이 나지 않고 연필이 깎이는 모습이 반투명 플라스틱 겉면을 통해 보이는 새 연필깎이를 사줬다. HJ이는 그 연필깎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연필을 깎고는 했다.
한번은 청소 시간에 의자를 올리다가,
“너무 무거워서 못 올리겠어!!!”
하고는 의자를 집어던지고 울면서 교실 밖으로 나갔던 적도 있었다.
HJ이의 마음속에는 팝콘 기계가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옥수수알이 '뻥' 하고 튀겨져 큰 팝콘이 되는 것처럼, 아주 작은 불편함도 HJ이의 마음속에서는 커다랗게 튀겨졌다. 그래서 HJ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흘리고, 소리 지르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가느라 바빴다.
시간이 흘러 3월에 심은 방울토마토 씨앗이 아이들 손 세 뼘만큼 자랐을 때쯤, HJ이도 부쩍 자란 게 느껴졌다. 키도 자라고, 눈빛도 달라졌다. 교실을 탈출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친구들과 부딪치는 정도도 줄어들었다. 다른 반찬들은 무섭다고 흰 밥과 김치만 고집하던 아이가 가끔씩 다른 반찬을 입에 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HJ이는 간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특강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아이들은 간식을 받고는 한다. 그날도 아이들은 각자 작은 간식 상자를 하나씩 받았다. HJ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식을 거절했다.
“전 됐어요.”
그때 옆에 앉아있던 GB이가 말했다.
“야, 너 그거 받아서 나 주면 안 돼?”
“어...? 그래...!”
“아싸!! 땡큐~!”
공짜 간식이 하나 더 생긴 GB이는 만세를 외쳤다. HJ이는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을 골똘히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날 HJ이는 뿌셔뿌셔를 한 봉지 가져왔다. 뿌셔뿌셔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다. HJ이는 그 과자를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 두 명에게 나눠줬다. 친구들은 환호했다.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뿌셔뿌셔를 입에 털어 넣었다. 한껏 올라간 친구들의 입꼬리에 뿌셔뿌셔 가루가 묻어 있었다.
HJ이는 그 모습을 한참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춤을 췄다. 그 춤은 마치 버퍼링이 덜 된 로봇이 추는 춤 같았다.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들은 그 춤에 ‘뿌셔뿌셔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HJ이의 몸짓이 뿌셔뿌셔 봉투를 흔들 때의 모습과 비슷해서였다.
다음 날, HJ이는 사탕을 한 움큼 들고 왔다. 이번엔 반 모든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 위해서. 내 책상 위에도 하얀 유가 사탕이 하나 놓였다.
"HJ야, 이거 선생님 주는 거야?"
"네."
"감동이다. 잘 먹을게."
HJ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렸다. 나는 사탕 껍질을 까 하얀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혀끝으로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퍼졌다. 마음속에서 찡한 감동이 올라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 같았던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기쁨을 주는 법을 배우며 HJ이는 잘 크고 있다. HJ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것 또한 기쁨이다. 우리 반 고슴도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