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25살에 나는 옷이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머릿속은 온통 옷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보지?', '이 옷을 어떻게 스타일링해보지?', '이 바지와 어울리는 신발은 무엇이 있을까?'와 같은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렇게 옷에 빠져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옷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옷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하나씩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통, 판매, 마케팅, VM 등 옷에 관련된 업무가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분야를 선택하기 전 '나'라는 사람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가장 핫한 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나의 옷과 스타일을 일기 형식으로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옷을 나와 잘 어우러지며 무드 있게 연출을 잘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아예 없었다. 주변에서도 '네가 옷 입는 스타일은 너무 개성이 강하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철이 없었던 나는 개성이 강하다는 말을 '넌 너무 옷을 못 입는다'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혼자만 잘 입는다고 생각한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매일 쓰던 인스타그램의 일기도 쓰길 멈췄으며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었다. 하늘이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해주려고 했던 것일까. 한동안 불지 않았던 바람이 전보다 포근해져 나의 피부에 와닿았다. 기분 좋은 바람 덕분인지 의기소침해져 있는 지금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감정이 샘솟샀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정리할 겸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포근한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는 그네를 양손으로 붙잡아 세웠다. 성인이 타기엔 그네 의자가 작았다. 그럼에도 기어이 엉덩이를 밀어 넣어 그네를 탔다.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생각을 비워내려고 애쓰던 중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3명의 친구들이 그네 근처 벤치에 앉아서 나누고 있던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넌 왜 시험 채점을 할 때 맞다는 표시를 왜 동그라미로 하지 않고 별로 표시해?" 친구(1)가 물었다.
"다들 동그라미로 하니까 별로 표시하면 좀 특별해 보일 거 같아서" 친구(2)가 답했다.
"쟤 이상해.." 친구(3)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들 동그라미로 표시할 때 별로 표시하는 친구(2)라는 녀석이 너무 귀여웠다. 감정을 비워내던 중에 카메오처럼 나의 청각에 특별출연 해준 어린 친구 3명 덕분에 잠깐동안 싱그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타던 그네를 멈추고 집으로 향하려 놀이터 밖을 나설 때 친구(2)가 했던 이야기가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좀 특별해 보일 거 같아서?"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른 사람이나 개채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개성'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으로 갑자기 떠올랐다.
주변에서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였다. 다시 말하면 나만의 고유한 느낌과 스타일이 있다는 것 아닌가. 주변에서의 썩 좋지 못했던 반응과 무관심했던 인스타그램이 '나는 옷을 잘 입는다'에서 '나의 개성에 맞게 옷을 입는다'라고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 시점에 난 다시 불타올랐다.
'나의 스타일을 지켜봐 주는 팔로워를 1년 안에 1,500명 만든다'라는 목표를 세우며 멈췄던 일기를 다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문제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기의 형식이었지만 SNS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공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정보성이 있는 글도 아니었고 나의 스타일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피드들로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태도가 제일 문제였다.
먼저 다가가보자, 옷 사진을 잘 찍으시는 분들, 옷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옷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옷에 관련한 전문 지식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물어봤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기다리듯 답변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답변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연락을 남겼다.
"답변을 한 번이라도 주실 때까지 연락을 취해보자!"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존재일지 모르나 스스로는 열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연락을 남겼을 때 진심이라 생각하셨는지 답변을 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노력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개선해야 할 점들과 잘하고 있는 부분들을 먼저 짚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의 피드들을 수정해 나갔다.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피드에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두 명씩 팔로워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빠르진 않지만 계정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했던 기간이 지났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착장으로 업로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렇게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나고 있을 무렵 목표로 했던 팔로워를 달성하게 되었으며 팔로워, 성취감,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또 다른 목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판매를 해보고 싶다. 특히 사람이 가장 많고 우리나라의 패션이 시작되는 곳 서울에서 스스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람들에게 판매를 해보자!"
인스타그램을 통해 얻은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창원에서 모든 일생을 보낼 줄 만 알았던 나였지만 더 큰 곳에서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패기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자멸을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서울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서울 생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레스모아'에서 신발을 판매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하고 싶음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