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정직함
할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 큰집 거실은 늘 그렇듯 북적이고 진중하다.
나물 무치는 소리, 부엌에서 들려오는 설거지 소리, 남자 어른들이 제사상을 준비하는 움직임. 온 가족이 모여 할아버지를 기리는 시간.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로, 평범한 안부가 오간다.
"너는 요즘 뭐 하니?"
큰어머니가 나물을 다듬으며 묻는다. 별 뜻 없는 인사, 진심이 담긴 관심.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괜히 움찔한다.
내가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괜히 제 발이 저린다.
"아... 글 써요."
"아, 그렇구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 다양한 일들을 하네."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보기 좋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봐라."
격려와 응원이 담긴 말들이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스스로 위축된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다.
화장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일자리 앱을 켜볼까 하다가,
어제 쓴 글에 달린 "덕분에 위로받았습니다"라는 댓글을 다시 읽는다.
그 한 줄에 마음이 조금 풀린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뜨거운 접시를 나르고, 기름 냄새 밴 앞치마를 매고,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돈은 확실히 들어왔지만, 그날그날이 똑같았다.
지금은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다.
거실로 돌아가면, 가족들은 조용히 제사 준비를 마저 한다.
누구 하나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하게, "힘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도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제사가 끝나고 차 안에서 창밖을 본다. 귓가에 남은 가족들의 따뜻한 말들이 자꾸만 맴돈다.
"네가 행복하면 그게 제일이지."
"요즘 경기가 어렵다더라, 힘내라."
"그래도 글 쓴다는 거 멋지다."
그 말들이 선의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그저 괜히 부끄럽다.
어둠 속을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들.
저마다 다른 속도로,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을 팔아 돈을 받는 명확한 거래와,
시간을 써서 의미를 찾는 불확실한 길 사이에서.
터널을 빠져나온다.
갑자기 쏟아지는 도시의 불빛들.
어둠 속에서 빛으로,
숨은 곳에서 드러난 곳으로.
할아버지 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 너머 불빛들을 바라보는
33살의 나에게.
부끄러움도 빛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