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의 실수에는 엄격할까
도서관 2층,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먼지들을 금빛으로 물들이던 오후였다. 나는 빈 의자 앞에 서서, 그 위에 놓인 가방 하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세 시간 전에도 저 자리에 있었고, 한 시간 전에도, 십 분 전에도 저 자리에 있었다. 가방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안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솟아났다. 공공의 예의, 지켜야 할 원칙 같은 것들이었다.
급한 일로 보낸 카톡에 '읽음' 표시만 뜬 채 두 시간이 지났을 때도 그랬다. 검은 화면 속, 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보며 나는 상대방의 무심함을 탓했다. 원칙을 어긴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쉽게 판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늘 약속에 늦는다.
그날도 그랬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은 이미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메시지를 보냈다. "차가 너무 막히네, 거의 다 왔어!" 늘 쓰는 변명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그 다정한 거짓말 앞에서 나는 안도하며, 동시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관대함에 기대어, 나의 부주의를 용서받는다. 나는 그들의 연민 덕분에, 나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타인의 작은 실수에는 날카로운 원칙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나의 명백한 잘못에는 따뜻한 연민을 기대하는 이 모순된 마음.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이면 충분하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내가 원칙이라 믿었던 것들은 얼마나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었던가. 내가 연민이라 믿었던 것들은 얼마나 이기적인 자기 위안이었던가.
다시 그 도서관의 가방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가방의 주인은,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내 메시지에 답하지 못했던 그 사람은, 차마 글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그 침묵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중요한 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런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순간들로 채워진다. 그 작은 순간들에서까지 원칙의 칼날을 휘두른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상처투성이가 될까.
친구의 다정한 거짓말이 나를 구원했듯이, 나의 작은 연민도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관대함 덕분에 무사히 하루를 마친다.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을 눈감아준 친구 덕분에, 나의 서투름을 이해해준 동료 덕분에,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가족 덕분에.
도서관을 나서며 창밖을 본다.
저녁 햇살이 먼지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누군가의 빈 자리를 따뜻하게 비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리를 지켜주며, 누군가에게 자리를 맡기며 살아간다.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