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지 않는 당신의 일은, 무엇을 남깁니까?
버스 안,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한다. 나만 창밖을 본다.
신호등에 멈춘 짧은 순간, 유리창 너머로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어진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낭비'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 시간에 하루치의 숨을 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간을 렌탈하듯 넘기며 산다.
출근길, 약속, 할 일, 알람.
누군가 정해준 시간표에 맞춰 하루를 분할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모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야 할까?
새벽 6시, 온 세상이 잠든 사이 커피를 내린다.
새벽 공기 속에 섞인 원두 향, 노트북을 열면 하얀 화면이 기다린다.
몸은 피곤한데,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는 손끝의 온기, 문장이 한 줄씩 쌓인다.
의무감으로 무거웠던 어깨가, 이 순간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돈을 버는 행위가 나를 소모시켰다면, 글을 쓰는 행위는 흩어졌던 나를 다시 모으고 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이 시간만큼은 내가 온전히 나인 시간이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향과 함께 문장 하나를 완성한다.
첫 '좋아요' 알림이 왔을 때,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충만함이 밀려온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을 팔아 생존 허가증을 받는 대신
시간을 써서 내 존재의 증명서를 받는 기분이 든다.
마트에서 줄을 서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
버스 창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구름을 세어볼 때,
그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내 마음을 환기시킨다.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파는 시간과 버는 시간.
파는 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버는 시간은 주머니 속에 남겨둔 작은 조약돌처럼 오래 기억된다.
파는 시간은 남의 요구에 응답하는 시간,
버는 시간은 내 마음이 자라나는 시간이다.
물론,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파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시간을 팔 필요는 없다.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버는 시간이 있다면,
돈이 되지 않아도 기꺼이 몰두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창밖을 보며 생각한다.
지나가는 풍경들처럼 우리의 시간도 흘러간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보내는 시간과
창밖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이
똑같은 시간일까.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오늘도 나는 시간을 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쓴다.
창밖을 스치는 빛,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는 손끝의 온기.
그 소소한 순간들이
오늘의 나를 조용히 완성한다.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