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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진짜 재능은 '그만두지 않는 것'이었다

33살, 첫 소설을 쓰며 마주한 의심과 믿음 사이

by 낙원
이적 - 걱정말아요 그대: 불안한 마음을 안아주는 따스한 위로처럼

조회수 127.
새로고침을 누른다. 여전히 127.
옆 탭에는 브런치 구독자 수가 떠있다. 260명.

숫자들이 나를 규정한다.
아니, 내가 숫자들에 나를 가둔다.

커서가 깜빡이는 빈 문서 앞에서 나는 또 멈춰있다. 옆 창에는 며칠 전 플랫폼에 올린 소설 3화가 떠있다. 조회수 127, 댓글 3개.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계속 읽고 싶어요. 다음 화 기다릴게요!"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33살에 이제 와서?'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의심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더 크게 울린다.

낮에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네 소설 읽어봤어. 진짜 재미있더라. 이거 끝까지 써봐. 충분히 가능성 있어."

형편없으면 하지 말라고 할 텐데, 해볼 만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들의 응원이 고맙지만, 역설적으로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나만 믿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다들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닐까?'

어제는 친한 동생이 물었다.
"형, 소설로 먹고살 수 있어? 좀 더 쉬운 길이 좋지 않을까?"

동생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물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글쎄."

"몇 시간째 그러고 있어?"

시계를 봤다. 오후 10시.
오전 9시부터 앉아있었으니 11시간째다.
11시간 동안 쓴 글자 수: 13,216자.

사회적, 경제적으로 1인분을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작아진다.

삭제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13,216자를 지우는 데는 0.1초면 충분하다.

그런데 못 지웠다.

아니, 정확히는 지우고 나서도 다시 Ctrl+Z를 눌렀다.
형편없는 13,216자지만, 이게 오늘의 나였다.

그때 깨달았다.
매일 의심하면서도 매일 여기 앉아있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재능'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에세이를 쓸 때는 이렇지 않았다. 내 경험을 담담히 풀어내면 됐고, 독자들의 공감이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고,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둬야 한다.

3개월 전 첫 글을 올릴 때의 떨림.
'발행' 버튼이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응원합니다"라는 댓글 하나.
모르는 사람이 내 글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 후로 매일 썼다.
때론 하루에 만 자, 때론 고작 백 자.

어쩌면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확신에 차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믿음은 아니다. 의심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딛는 것, 불안함을 안고도 다음 문장을 쓰는 것, 그것도 자신을 믿는 방식이다.

며칠 전, 독자 한 분이 긴 댓글을 남겼다.
“작가님은 정통 판타지를 찾는 저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습니다. 꼭 완결까지 힘내주세요. 응원합니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다. 의심 속에서도 계속하는 것이다.

33살.
누군가는 늦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다.

나는 쓴다.
의심하면서도 쓴다.
불안해하면서도 쓴다.
그것이 나의 믿음이다.

오늘도 나는 의심한다.
그리고 쓴다.
이 모순된 행위가, 어쩌면 가장 순수한 믿음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33살의 초보 소설가는 오늘도 새벽의 모니터 앞에 앉는다.
커서가 깜빡인다.
조회수는 여전히 127이다.

하지만 나는 128을 기다리며 오늘도 쓴다.
의심이 멈추는 날은 글이 멈추는 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의심하며, 기꺼이 쓴다.
이것이 33살 초보 작가의 재능이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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