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 - 에필로그
29편의 글을 쓰며 내가 만난 첫 번째 독자는 슬픔이었다.
10화의 절망 앞에서, 28화의 좌절 속에서,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그 모든 어둠 속에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슬픔이 내게 가장 정직한 언어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유 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끝없는 질문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질문들은 언제나 슬픔의 옷을 입고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안다. 슬픔이 없었다면, 나는 이토록 깊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걸.
찰리 채플린이 말했듯,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내가 쓴 29편의 글이 그랬다. 쓰는 순간마다는 절절한 비극이었지만, 이제 멀리서 돌아보니 따뜻한 희극이 되어 있다.
1화에서 "아무것도 아니기에 뭐든 될 수 있다"고 했던 나는, 정말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랑받으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고,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운 사람이다.
이 역설적 존재감이 한때는 괴로웠지만, 이제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임을 안다.
완전히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사랑할 수 있고, 완전히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더 가까워지려 애쓸 수 있다.
사람과 삶.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의 여정.
우리는 매 순간 죽어가면서 동시에 살아간다.
매듭을 짓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실을 뽑아낼 준비를 하는 일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지만, 아쉬움이 있기에 다시 만날 수 있다.
슬픔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슬퍼해야만 한다.
그것이 삶이고, 사람이고, 존재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발견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슬픔에게 말한다.
"고마웠어. 네가 내게 준 깊이와 진실함에 감사해."
거부가 아닌 고마움으로, 원망이 아닌 사랑으로.
슬픔은 나의 적이 아니라 스승이었다.
슬픔이여, 안녕.
완전한 이별이 아닌, 성숙한 작별을.
언젠가 다시 만나더라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너와 함께 걸어온 이 길이 나를 더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으니까.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
그 낙원은 슬픔이 없는 곳이 아니라, 슬픔마저 품을 줄 아는 마음이 있는 곳이었다.
29편의 글과 함께, 나는 그 낙원의 문턱에 서 있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
슬픔과 작별한 자리에서 피어날 새로운 사랑들을 위해.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