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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차단기

김담곤 에세이

by 백일몽

SNS의 활성화가 극에 달안 지금, 지구는 담소의 종말에 빠졌다. 소통하는 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까 대면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다 큰 성인이야 크게 문제가 없지만, 성장기 어린이에겐 크게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에 오지랖 좀 부렸다. 과거였으면 주변 사람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만, 요즘은 참견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 정류장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남학생의 책가방 지퍼가 입을 냅다 벌리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가방에서 책이 흘러내릴까 내심 걱정했다.


"학생 책가방 열었어요."


사실 이런 말 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근데 난 해냈다. 하지만, 귀에 사회차단기를 장착하고 있던 소년은 내 말을 무시한다. 그래서 어깨를 툭툭 친다. 그제야 사회차단기를 제거하곤 나를 본다.


"학생 책가방 열었어요."


당연히 고맙단 인사말과 함께 가방을 닫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방만 닫고는 다시 사회차단기를 낀다. 혹자는 이런 아이를 보며 요즘 애는 싹수가 없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나 난 저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른과 상호작용하기 힘든 사회 때문에 표현이 서툴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가던 카페를 가서 책 읽거나 공부한다. 열심히 오늘 과업을 하는 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고 화장실 칸에 있는 휴지를 찾는다. 두 칸 중에 한 칸에만 휴지가 있었다. 나가려는 순간 어떤 남자가 급하게 들어간다. 또 나는 참견했다.


"거기 휴지 없어요."


사회차단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무시당한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내 개입은 거기까지였다. 급하면 양말이라도 쓰겠지 뭐.




조너선 하이트의 『 불안세대 』에는, 성장기 어린아이가 친구와 만나는 시간을 연도별로 통계 낸 자료를 보여준다. 2011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래프는 급하락 했다. 2009년에 10대가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하루 평균 120분 이상이었다면, 2019년엔 50분도 되지 않았다. 밖에서 노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대상도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노이즈캔슬링이란 기능을 탑재한 각종 이어폰과 헤드셋이 나온다. 안 그래도 사회에서 상호작용이 필요한데, 이런 사회차단기는 사람을 더욱 인터넷에만 몰입하게 만든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네모난 화면 속에 빠지는 사회가 됐다.




소틍은 쉬워졌지만, 말은 사라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군가의 어깨를 툭 치는 게 불편한 사회에 살게 된 걸까.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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