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세편 2 :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희망의 두 줄

by CㅇSMㅇS

타이밍 요법

마리아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우리는 이전에 받았던 나팔관 조영술과 정자 검사 결과지를 제출했다. 의사는 차분하게 결과를 검토한 후 말했다.

"검사상으로는 특별한 이상이 없으니, 일단 타이밍 요법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타이밍 요법. 말 그대로 의사가 정확한 배란일을 계산해서 '오늘이 그날'이라고 알려주면, 그날에 맞춰 관계를 갖는 방법이었다. 자연 임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클로미펜이라는 배란유도제를 복용하여 난포 성장을 촉진하고,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로 난포의 크기를 측정하여 더 정확한 배란 시점을 예측한다는 점이 달랐다.

의사는 "클로미펜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자극해 난소가 더 많은 난자를 성숙시키도록 돕는 약입니다. 부작용으로는 안면홍조나 복부 팽만감이 있을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우리의 본격적인 난임 치료가 시작되었다.


계획된 사랑, 의무가 된 관계

첫 번째 달은 기대 반, 긴장 반이었다. 의사가 지정한 날이 다가오면, 일찍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원래는 자연스럽고 즐거워야 할 일이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는 기분이었다.

로맨틱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임신이라는 목표만 남았다. 심지어 '오늘 안 하면 이번 달도 놓친다'는 부담감이 더해지면서 관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게 맞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어지는 실패

첫 번째 달, 생리가 시작되었다.

"괜찮아, 첫 번째니까. 다음 달에는 될 거야."

두 번째 달, 또 생리가 시작되었다.

"의사가 3개월은 해봐야 한다고 했잖아. 아직 시간 있어."

세 번째 달, 또다시 생리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매달 생리 예정일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초조해했다. 하루라도 늦으면 '혹시?'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깊은 절망에 빠졌다.

특히 아내에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몸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사람이니까. 클로미펜의 부작용으로 안면홍조와 복부 팽만감까지 겪어야 했다.


아내의 한계

세 번째 실패 후, 아내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요즘 잠을 못 자겠어. 밥맛도 없고, 직장에서 집중도 안 돼."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내였는데, 직장에서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질병 휴직을 결정했다. 다행히 난임은 질병 휴직 사유로 인정되었고, 공무원 질병 휴직의 경우 1년 이내에는 본봉의 70%가, 1년 초과 시 50%가 지급되었다.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정말 고마운 제도였다. 실제로 많은 공무원 난임 여성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단 치료에 집중하자. 이 상태로는 일도, 치료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휴직을 결정하던 날 밤,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자신이 약해져서 미안하다고, 남편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고. 나는 그런 아내를 안아주며 함께 울었다.

'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인공수정이라는 새로운 시도

의사도 "둘 다 정상인데 왜 안 되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다음 단계로 인공수정을 제안했다.

"인공수정은 남편분의 정자를 세척하고 농축해서 직접 자궁 내에 주입하는 방법입니다. 임신 성공률은 회당 10~20% 정도예요."

자연임신 확률(건강한 부부 기준 월 20~30%)보다 낮아 보이지만, 이는 이미 난임 진단을 받은 부부들만의 통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더 높은 확률이라는 설명이었다.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먼저 아내가 배란 유도 주사를 맞아야 했다. 집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배에 놓는 주사였다. 옆에서 차가운 주삿바늘이 직접 배에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의 무력함에 한탄했다.

게다가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같은 부작용도 있었다. 아내는 종종 구토를 했고, 점점 야위어갔다.

배란일이 가까워지면 더 자주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난포의 크기를 재고, 정확한 배란 시점을 예측하는 것이었다. 난포가 어느 정도 되면 배란 유도 주사(hCG)를 맞고, 그로부터 24~36시간 후에 시술을 받는 것이었다.


차가운 시술실에서

인공수정 당일, 아내는 먼저 시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별실에서 정액을 채취해야 했다. 그 '별실'이라는 곳은... 정말 설명하기 민망한 공간이었다.

작은 방 안에는 의자 하나와 작은 세면대, 그리고 벽에 걸린 TV가 있었다. TV에서는 성인 동영상이 나왔다.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말 괴로웠다. 아내가 시술대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현실감.

짧은 쾌감 뒤에 찾아온 것은 인생에서 가장 찝찝한 현타였다.

'이게 맞나? 우리가 아이를 갖기 위해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첫 번째 인공수정의 실패

2주 후, 결과는 실패였다.

또다시 생리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또다시 절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의 깊이가 달랐다. 더 적극적인 치료를 했는데도 안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벌써 병원을 다닌 지도 6개월이나 지났다.

아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는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가끔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에게 정말 아이가 올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반복하며,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시험관 시술이라는 마지막 카드

병원에서는 몇 번 더 인공수정을 시도해 보자고 했지만, 우리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저녁. 아내가 제안했다.

"시험관 시술을 해보자."

더 이상 이 상황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3월에 병원을 가면서 무조건 올해 안에는 꼭 성공하자는 둘만의 다짐을 했고, 벌써 9월이 되어 연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확률이 더 높다면,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시험관 시술로 한 번에 해결하고 싶었다.

시험관 시술(체외수정, IVF) 준비는 더욱 복잡했다. 배란 유도를 위해 아내는 더 많은 주사를 맞아야 했다. 하루에 2~3번씩, 때로는 배에, 때로는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더 자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내는 매번 아파했지만 꾹 참았다.

"괜찮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다.


난자 채취의 날

드디어 난자 채취일이 왔다. 아내가 가장 겁내는 시간이었다.

난자 채취는 긴 바늘로 난소의 난포를 하나씩 찔러 난자를 빼내는 과정이었다. 의사는 "마취를 하니까 크게 아프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지만, 그래도 고통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내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시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시술실 밖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계만 쳐다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간호사들의 발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계음들, 모든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1시간가량 지나서야 아내가 회복실로 나왔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아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몇 개나 나왔대?" "3개. 양이 적대."

3개. 평균(5~10개)보다 적은 숫자였다. 의사는 "나이가 있으시니까 개수보다는 질이 중요해요"라고 위로했지만, 이미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그 '별실'에 가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찝찝하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희미한 두 줄의 기적

이렇게 채취한 난자와 나의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시켜 수정란(배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궁에 이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난자가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정이 되어도 분열 과정에서 발달이 멈추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우리는 운이 좋지 않았다. 3개의 난자 중 2개가 수정 실패나 분열 과정에서 폐기되고, 단 하나의 수정란만 남았다.

이 말인즉슨, 이번에 실패하면 그 고통스러운 주사들과 난자 채취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단 하나의 수정란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하는 상황.

배아 이식은 간단했다. 가는 관을 통해 자궁 내막에 수정란을 넣는 것이었다. 아프지도 않았고,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의 2주간 기다림이 정말 길었다.

매일매일이 1년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혹시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고 기대하기도 하고,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몇 번이나 사다 놓았지만, 너무 일찍 해서 스트레스받을까 봐 참고 또 참았다.

인터넷 난임 카페에서는 "9일 차부터 나온다", "10일 차에 희미하게 보인다" 같은 후기들을 수없이 찾아 읽었다. 남의 성공담을 보면서 희망을 품기도 하고, 실패담을 보면서 불안해하기도 했다.

마침내 검사일 아침이 왔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것 좀 봐."

임신 테스트기를 받아 든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아주 아주 옅은 두 번째 줄이 보였다. 너무 흐려서 자세히 봐야 겨우 보일 정도였지만, 분명히 있었다. 햇빛 아래서도 보고, 형광등 아래서도 보고, 각도를 바꿔가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게... 이게 맞나?" "흐리긴 하지만...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다. 기쁨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진짜일까? 아닐까? 희망을 가져도 될까? 아직 너무 희미해서 확신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자."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희망의 신호가 드디어, 아주 희미하지만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 지난 몇 년간의 기다림과 고통, 무수한 밤의 걱정과 눈물이 모두 이 작은 선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았다.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절망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본어판 : 混世編 2 : 絶望と希望の狭間で|COSMOS

중국어판 : 混世篇 1 : 1%夫妻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

keyword
이전 02화혼세편 1 : 1%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