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의 이야기
희미한 두 줄의 잔혹한 진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확신이 아닌 희망에 가까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희미한 줄은 여전히 희미했다. 아니, 어떤 날은 더 희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진해지지 않을까?"
아내가 테스트기를 들고 중얼거렸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희미한 두 줄'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어떤 글에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어떤 글에서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결국 우리는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희미한 줄은 더 진해지지 않았다. 아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나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속만 타들어갔다.
드디어 병원에 다시 가는 날이 왔다.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앉아있었다. 아내의 손바닥에서 차가운 땀이 느껴졌다.
"금○○님"
간호사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진료실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의사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임신이 아니십니다."
짧고 명확한 한 마디였다. 아내의 어깨가 순간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럼 테스트기의 희미한 줄은..."
"시술 과정에서 투여한 hCG 호르몬 때문입니다. 체내에 남아있던 호르몬이 반응을 일으킨 거예요. 흔한 일입니다."
흔한 일이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우리에게는 전혀 흔하지 않은, 너무나 특별하고 절망적인 순간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아내는 창밖만 바라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는 말도, '다음에는 될 거야'라는 말도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 홀로 남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난 몇 주간 우리가 품었던 희망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여보, 우리 저녁 먹고 산책이라도 할까?"
"...응."
아내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억지로라도 일상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가벼운 운동도 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숨어있었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나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괜히 다른 길로 돌아가곤 했다.
의사는 아내의 몸이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호르몬 치료로 인한 부담이 컸고, 다음 시술까지는 최소 몇 개월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어느 날 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여보, 나 생리가 시작됐어."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미 임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리가 시작됐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마침표였다. 완전한 끝이었다.
아내는 그날 밤 유난히 오래 샤워를 했다.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섞여 작은 흐느낌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들은 척하지 않았다.
12월의 정동진
12월 1일, 정동진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연애시절 함께 갔던 그 기찻길을 다시 타고 있었다. 새해 첫날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테고, 우리만의 조용한 의미를 만들고 싶어 일부러 한 달 앞당긴 날짜였다.
새벽 기차 안에서 서로 기대어 잠을 청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아내의 어깨가 내 어깨에 닿았다. 그 작은 접촉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정동진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깜깜했다. 바닷가로 향하는 길,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해돋이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동안,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아내가 내 품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때 수평선 너머로 붉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상처를 잠시 덮어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희망도, 함께.
편의점에서 산 따뜻한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오랜만에 진짜 웃음을 지었다. 간단한 라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바닷가에 다시 앉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대화였다.
"아들이면 '서준'이 어때? 내 이름 '서'자에 주니어를 줄여서 '준'을 붙이는 거야."
"서준... 좋네. 그럼 딸이면?"
"'서은'은 어떨까? 우리 둘의 이름을 하나씩."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 밝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이름들을 적어나갔다. 먼저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을, 그리고 그 옆에 작은 하트를, 마지막에 '서준'과 '서은'을 정성스럽게 썼다.
바람이 불어와 모래가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쓴 이름들도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도가 밀려오자, 그 모든 글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이 아름다웠다. 언젠가 다시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희망이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아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언젠가는 정말로... 저 이름들을 불러볼 수 있을까?"
"그렇게 될 거야."
떠오르는 해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조용한 크리스마스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미리미리 준비를 하며 들떠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 하지 않은 채, 우리는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집에 있기로 했다.
TV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는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다. 그 날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스트레칭을 했다.
내가 아내의 등을 밀고 있을 때였다. 아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보."
아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미안해."
"뭐가?"
"나랑 결혼 안 하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면... 벌써 아빠가 되었을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처럼. 그 말이 가슴 깊숙이 박혔다. 아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게 너무 가여웠다.
"무슨 소리야..."
"정말이야. 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잖아."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보,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아내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내가 내 품에서 계속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내가 자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바보야,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하지만 내 말도 공허하게 들렸다.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안은 채 울었다.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절망감, 무력감, 죄책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미안함까지.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세상은 밝아지고 있었지만, 우리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우리... 괜찮을까?"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괜찮을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괜찮을 거야."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안은 채 잠이 들었다. 소파 위에서, 서로의 온기만을 의지한 채. 그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선물 대신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 동시에 서로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이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 솔직하게 아파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나누었다.
일본어판 : 混世編 3:静かなクリスマス|COSMOS
중국어판 : 混世篇 2 :安静的圣诞节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