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병원으로
평범한 일상
아내가 항상 우울하게 지내고 있던 건 아니다. 아내는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지만 그만큼 빨리 훌훌 털어버리곤 했다. 좀 단순한 성격이었는데, 그게 매력인 여자였다.
휴직을 하니 시간이 많아서 여성문화회관 같은 데서 하는 다양한 교육에 참석했다. 앙금플라워도 하고, 재봉도 시작했다. 집에서도 연습한다고 재봉틀도 샀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발레도 배웠다. 몸이 꽤나 유연해져서 본인도 만족해했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난임을 겪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와 같은 병원을 다녀서 임신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아내를 위로해줬고, 아내는 이런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회복하면서 봄이 다가왔다. 따뜻해진 날씨만큼이나 아내의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새로운 취미들이 주는 작은 성취감들과 동병상련의 사람들과 나눈 따뜻한 이야기들이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있었다.
두 번째 기회
우리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이번엔 될 거야."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두 번째 시도. 아내는 또다시 배에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hCG 주사를 건너뛰기로 했다. 지난 번 가짜 양성 반응 때문에 받았던 충격을 생각하면, 이 결정이 현명해 보였다.
그래도 과정은 똑같았다. 또다시 그 차가운 시술실에서 아내는 난자 채취를 받았고, 나는 또 그 '비밀의 방'에서 홀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마지막이길...'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더 이상 아내가,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지 않기를.
그리고 이식, 그리고 기다림
다행히 이번에는 3개의 수정란이 생겼다. 지난번보다 둘이나 많았다. 이번엔 배아를 2개 이식하기로 했다. 의사는 지난번 1차 실패를 겪었으니, 확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해주었다.
"2개를 이식하면 이란성 쌍둥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져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완벽하겠네."
"그러게, 한 번에 아이 둘을 얻는 거 아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쌍둥이가 태어날 상황을 상상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한 아이는 나를 닮고, 한 아이는 아내를 닮을 거라고 하면서 웃었다. 자식이 우리의 장점만 모이면 좋겠지만 운이 나빠서 단점만 모이면 어쩌나 하는 농담도 했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쌍둥이 육아는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그런 걱정마저도 달콤했다.
이식 후의 시간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더디게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일주일 같고,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생활했고, 나는 괜한 걱정을 하며 아내를 살폈다.
그렇게 9일이 지났다.
새벽의 희망
그날 새벽, 아내가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반쯤 잠든 상태에서 아내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아내가 실망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한 줄이야..."
아내의 어깨가 축 처진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나도 화장실에 가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세면대 위에 놓인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보니 뭔가 다른 것 같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희미하지만 두 번째 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보! 이거 봐!"
급하게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달려와서 테스트기를 들여다봤다.
"어? 진짜네... 희미하지만 두 줄이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너무 희미해서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임신의 신호일까, 아니면 그냥 착각일까. 불안했다.
"이번엔... 이번엔 진짜일까?"
지난번에도 두 줄이 나왔었다. 그때의 실망감이 아직도 생생해서 감히 기대하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이번엔 hcg 주사도 맞지 않았으니, 혹시나 하는 희망이 조금 더 컸다.
무너져버린 아침
아침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보다는 아침이 더 정확할 테니까.
그런데 결과는 한 줄이었다.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지난번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새벽에 봤던 희미한 두 줄이 나에게 준 희망이 컸던 만큼, 떨어지는 것도 더 아팠다.
아내와 아침을 먹다가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가 될 나이에도 이렇게 엉엉 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서른 넘은 아저씨가 아침밥을 입에 넣은 채 우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지만 그때는 정말 견딜 수 없었다.
아내가 나를 안아주었다. 정작 가장 아프고 힘들었을 사람은 아내일 텐데, 아내가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미안했다. 고마웠다.
신의 장난 같은 해프닝
그래도 일상은 계속되어야 했다. 무거운 마음을 끌고 출근했다. 일에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동료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이 오늘따라 유독 부러워 보였다.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내였다.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임신테스트기 사진이었다. 비록 사진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희미했지만, 지금까지 본 두 줄 중에서는 가장 선명했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급하게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이거 진짜야?"
"응, 다시 해봤는데 두 줄이야. 이번엔 지금까지 중에 가장 진한 두 줄."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기쁨이 묻어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의 절망적인 '한 줄'은 정말 극적인 해프닝이었다.
사실 임신테스트기를 자주 구매하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저렴한 제품을 대량으로 주문해서 쓰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 아침에 쓴 것이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신의 장난 같다. 수많은 테스트기 중에서 하필 그 절망적인 순간에 불량품이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 한 줄 때문에 엉엉 울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매일 테스트를 했다. 신기하게도 선은 점점 진해졌다. 마치 우리의 희망이 조금씩 확실해지는 것처럼. 그 선이 진해질수록, 매일매일이 잿빛 같던 우리 부부의 삶에도 조금씩 색깔이 입혀지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시작
며칠 후 병원을 찾았다.
“혈중 hCG 수치가 227이 나왔어요. 이 정도면 초기 착상이 아주 잘 된 거예요.”
의사의 말에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드디어, 정말 드디어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시간들, 실망과 좌절, 그리고 희망. 모든 것이 이 순간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병원 앞 카페에 앉아 아내와 마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구나.
그동안 '언젠가는 아빠가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몇 개월 후면 아빠가 된다'는 현실이 되었다. 아직은 믿기지 않지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행복했다.
"고생했어, 여보."
"우리 고생했어. 남편, 나 너무 행복해."
아내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우리 고생 많이 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종류의 '행복한 고생'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일본어판 : 混世編 4:神様のいたずら|COSMOS
중국어판 : 混世篇 2 :安静的圣诞节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