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어묵 나베

부산에서 배운 어묵의 맛

by 굳데이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묵은 언제나 일상에 섞여 있던 음식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포장마차에서,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노점에서. 어묵은 언제나 국물 속에 있었고, 그 국물은 유난히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묵을 떠올리면 맛보다 먼저 고향의 공기가 따라온다. 조금 습하고, 바람은 세고, 사람들은 바쁘지만 먹는 순간만큼은 느긋했던 풍경 말이다.


부산 어묵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삼진어묵을 비롯해 이름 있는 어묵 대부분이 부산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몇 해 전에는 이재용 삼성 회장이 다녀가며 ‘핫플’이 된 부평시장 어묵 맛집도 부산에 있다. 관광객에게는 특별한 먹거리겠지만, 부산에서 자란 사람에게 어묵은 유행보다 생활에 가까운 음식이다. 대단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늘 거기 있어서 먹게 되는 음식이다.


몇 년 전부터 길거리 정리정돈이라는 이름 아래 포장마차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마다 포장마차 하나쯤은 꼭 있었다. 그곳의 주메뉴는 늘 어묵이었다. 어묵 옆에는 흰 가래떡, 이른바 ‘물떡’이 꼬치에 꽂혀 함께 끓고 있었다. 쫀득쫀득하면서도 국물 맛이 배어든 물떡은 부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다른 양념도 없었는데, 그 조합은 유난히 완벽했다.


추운 계절이면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 잔과 어묵 몇 꼬치를 먹곤 했다. 화려한 안주는 없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 한 컵이면 하루가 정리됐다. 그 국물은 배를 채우기보다는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찬 바람이 부는 늦은 저녁,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복잡한 설명보다 뜨거운 냄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음식이 나베였다. 나베는 빠르게 완성되는 요리가 아니다. 재료를 손질하고, 냄비에 하나씩 올리고,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음식 앞에서는 괜히 급해질 수가 없다.


요즘은 어묵도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예전에는 어묵이면 어묵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어묵을 고르느냐에 따라 국물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번 나베에는 일부러 수제어묵을 골랐다. 시판 어묵과 가장 다른 점은 첫 입에서 느껴진다. 지나치게 탄탄하지 않고, 씹을수록 생선 맛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소금기보다 재료의 향이 먼저 올라오는 어묵이다.


수제어묵은 만드는 과정에 손이 많이 들어간다. 생선을 갈고, 반죽하고, 모양을 잡고, 익히는 손의 반복. 기계로 균일하게 찍어낸 맛이 아니라, 한 입 한 입 맛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어묵 한 조각 한 조각이 국물 안에서 각자의 속도로 익어간다.


부산에서 자라며 수없이 어묵을 먹어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묵의 씹는 맛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국물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어묵 자체가 가진 힘이 중요해졌다. 좋은 수제어묵은 국물을 지배하지 않는다. 대신 국물과 천천히 섞인다. 자기주장을 앞세우기보다, 전체의 맛을 정돈해 준다. 그래서 나베에는 수제어묵이 잘 어울린다


냄비 앞에 서서 재료를 하나씩 올린다. 당근을 먼저 깔고, 표고버섯을 얹고, 메추리알과 어묵을 가지런히 놓는다. 국물을 붓는다.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상태의 냄비는 잠깐 고요하다. 곧 불을 올리면 작은 기포들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김이 천천히 퍼진다. 그 순간이 좋다. 요리가 시작됐다는 신호이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 재료


수제어묵(동태 300g, 갈치 200g, 갑오징어 100g, 새우 100g, 양파 1/2개, 청양고추 2개, 전분가루 8Ts, 빵가루 6Ts, 소금 1/2Ts), 당근 6cm, 생포고 3개, 삶은 메추리알 8알, 쑥갓 2줄, 육수(다시마 1장, 야채자투리, 디포리 소량)



# 요리 과정


동태를 준비한다.


새우를 준비한다.


오징어를 준비한다.


순살 갈치를 준비한다.


동태, 새우, 오징어, 갈치를 손질해서 준비한다.


양파, 청양고추를 준비한다.


양파, 고추를 다져서 준비한다


충분히 해동된 생선살, 양파, 고추를 믹서기에 넣어 간다.


전분가루와 빵가루를 준비한다.


믹서기에서 간 생선살에 전분가루와 빵가루를 섞는다.


생선살, 전분가루, 빵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다.


팬에 식용유를 많이 넣는다.


약불로 팬을 달구고, 젓가락으로 팬 밑바닥에 접착해서 10초 내에 거품이 올라오면 튀기기 시작한다.


생선살 반죽물을 일정량씩 튀긴다.


튀긴 생선살


당근과 표고버섯을 준비한다.


당근을 모양 내고, 버섯 표면에 칼로 무늬를 낸다.


쑥갓을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삶은 메추리알을 준비한다.


욱수용 디포리와 야채 자투리(대파등)를 준비한다.


다시마를 찬물에 넣고 뚜껑을 덮은 뒤 냉장고에서 12시간 우린다.


냄비에 다시마 우린 물과 육수 재료를 넣고 끓인다.


전골냄비에 당근, 버섯을 담고, 튀겨놓은 어묵, 메추리알을 나무꼬치에 꺼서 얹은 후 육수를 붓는다.

기호대로 간을 해서 끓인 후 쑥갓을 얹어 완성한다.


* 어묵을 찍어 먹는 소스는 국간장, 쯔유, 소금, 후추로 만든다.






국물은 진하지 않지만 깊다. 처음보다 먹을수록 편해지는 맛이다. 속을 천천히 풀어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런 국물 앞에서는 굳이 평가가 필요 없다. 맛있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날은 가족과 함께 먹었는데, 젓가락이 오가고 국물을 뜨는 소리만 남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대화도 줄었고, 먹는 속도도 느려졌다. 나베는 그렇게 식탁의 리듬을 바꿔놓는다.


다 먹고 나서 남는 것은 포만감보다 편안한 기분이다.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에 더 잘 어울리는 음식. 수제어묵 나베는 겨울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다. 서두르지 않고, 덜어내며, 천천히 끓이는 일. 다정함은 종종 이런 냄비에서 시작된다. 아마도 다음 겨울에도, 나는 이 나베를 다시 끓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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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