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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투명인간이었다면

2막. 초승


내가 투명인간이었다면,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려나.


버스를 무임승차하려나,

알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려나,

아니면 은행에 강도로…?


사실 잘 모르겠다.

투명인간이라고 해봤자

혹시 들킬까봐 나쁜 짓은 못 할 거 같고,

처음엔 신기해서

길을 좀 걸어보겠지.


그렇게 길을 좀 걷다가

너를 보게 되면

아무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조용히 뒤를 따라다닐 것 같아.


너의 하루는 어떤지,

나 없이 넌 어떤 일을 하고

무얼 보고 다니는지.


그러다가 문득 슬퍼질 것 같아.

나는 네 옆에 있는데

너는 날 보지 못하잖아.

보고 있으면서도 볼 수 없는, 당신.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투명한 쪽은 애초에 내가 아니었어.

네가 먼저 이 세상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됐잖아.

그래서 내가 너를 보려고 하는 동안

정작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늦게야 깨닫는다.


사진 속 웃음만 남겨두고

너는 이미 다른 자리로 가버렸는데

나는 계속 이 거리를 걸으며

네 뒷모습을 찾고 있었네.


혹시 지금 너는 내 옆에 있니.

하늘 저 위가 아니라,

정말로 이 길 위에서

투명한 몸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니.


보고 싶다. 이제는 절대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

그래도 마지막으로 부탁하자면,

투명인간처럼이라도 좋으니

내 옆에 있어줘.

나는 끝내 너를 놓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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