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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褥瘡)

사연 없는 욕창은 없다.

by 끌로드

"안녕하세요, 전담간호사 끌로드입니다. 오늘 환자분 욕창 소독하는 날이어서 왔어요. 어디 얼마나 좋아졌는지 볼까요?"


병원에서 나는 진료지원전담간호사로 일 하고 있다. 단어가 생소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인턴이 없는 현시점에 인턴 업무를 대행하는 직무라 생각하면 된다. 전담간호사로 업무를 하며 병동 간호사로 일 할 때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욕창이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에서 욕창에 대해 정의하길 지속적으로 압박받은 신체 부위에 혈액순환 장애가 일어나서 산소와 영양 공급이 부족해짐에 따라 피부, 피하지방, 근육의 허혈로 인해 발생하는 피부 손상, 즉 궤양이라 한다. 욕창은 피부손상이 어디까지 깊어지냐에 따라 단계를 구분한다. *1단계부터 4단계, 그 외에도 심부조직손상의심 욕창과 미분류 욕창이 있다.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은 아래 각주를 달아 놓을 테니 잠깐 보고 오면 될 것 같다. 주로 욕창이 호발 하는 부위는 뼈 돌출 부위로 엉치뼈, 무릎뼈, 정강이뼈, 발꿈치 등으로 신체 부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압박을 강하게 받는 쪽에 많이 발생한다. 특히 엉치뼈에 생기는 욕창은 깊이 측면에서도, 발생률 측면에서도 다른 부위 욕창과는 궤를 달리한다. 침상에 오래 누워있는 환자한테는 아무렴 엉치뼈가 가장 많은 압력을 받아서겠지. 그래서 욕창 드레싱 업무요청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엉치뼈 욕창드레싱이다. 엉치뼈 4단계 욕창은 2D로 보면 안 된다. 3D로 눈에 보이지 않게 안으로 상처가 나있는 *터널과 잠식도 확인해야 한다. 손을 넣어 환자의 무너진 속살을 만져가며 정확히 파악하는 그 과정은 한 번도 유쾌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마음속 침묵만이 환자에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마음가짐이었다.

드레싱을 하기 전에 먼저 환자 파악을 한다. 보통 욕창은 고령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사실 욕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환자 파악을 하면 알 수 있다. 움직임이 제한되어 특정부위가 장시간 압박되는 상황이면 욕창은 누구의 피부에나 조용히 가라앉는다. 욕창의 원인은 부동으로 인한 압박이긴 하지만 근본 원인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수술로 인한 부동, 마비로 인한 부동, 의식 저하로 인한 부동, 노화로 인한 부동, 우울감으로 인한 부동, 통증으로 인한 부동 등의 이유로 움직임이 제한되고 피부가 궤사 되기 시작한다. 단 한 명도 같은 사연은 없기에 환자의 성별, 나이, 과거력과 현상태를 파악해 환자와의 첫 만남에 내가 보일 언행에 대해 암암한 고민을 한다. 제 아무리 사무실에서 몸과 마음의 태도를 각고면려(刻苦勉勵)하면 뭐 하나, 항상 환자 병실 문 앞에 서면 죄다 잊어버리는데. 그럼에도 한 가지 절대적으로 지키는 것은 나에 대한 소개와 당찬 인사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갑자기 폭풍처럼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면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소속과 신분을 밝히며 하는 인사만큼 간단하면서도 라포를 쌓기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인사가 끝나면 이제부턴 본업 시작. 각 단계별로 드레싱 하는 방법이 다르다. 1-2 단계 욕창은 가벼운 소독과 얇은 foam제제를 이용해 드레싱을 마치면 된다. 문제는 3-4단계와 미분류 욕창이다. 이 정도 단계가 되면 소독하는 방식도 상태에 따라 다르다. 어떤 욕창은 베타딘으로 박박 문지르며 닦아내야 하고 어떤 욕창은 부드럽게 소독해야 한다. 또 어떤 욕창은 소독제로 클로르헥시딘을 쓰고 어떤 욕창은 소독제로 베타딘을 사용한다. 어떤 경우에는 *사강을 건조하게 채우고, 어떤 경우에는 사강을 습윤하게 채운다. 처음 욕창을 사정하고 드레싱 방법에 대해 회신을 주는 것은 원내에 상처관리팀이지만 실제로 드레싱을 수행하면서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사정하는 것은 나이기에 드레싱을 하며 욕창의 변화에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욕창은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호발 되는 만큼 치료 과정도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기나긴 레이스다. 드레싱을 열심히 해도 결과는 짧은 시간에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끔 최선을 다한 드레싱에서도 상처가 감염되기도 하고 창상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물론 전적으로 드레싱 문제는 아니겠지만-대, 소변으로 인한, 부동으로 인한, 체위 변경 시 마찰로 인한 등의 문제 등이 있다- 그렇기에 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주는 세심한 눈이 필요한 것이다. 사전에 획득한 환자 정보와 실제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면하면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드레싱 하면서 욕창 회복에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을 소거한다. 보호자에게 기저귀를 자주 갈아달라고 요청하거나 체위 변경 시 엉덩이가 마찰되지 않게 요청한다. 드레싱만 요이땅 하고 가는 간호사가 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내 두 눈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환자 욕창 회복에 진심이라 가끔 욕창 드레싱을 하러 가면 욕창이 너무나도 크고 깊어서 어떻게 저만한 욕창이 생길 수 있는지 나쁜 의미의 경탄을 할 때가 있다. 욕창은 길고 긴 시간 동안 인간의 무심함이 중첩되어 환자의 몸에 생긴 쓰라린 구멍이지 않을까 싶다. 본인, 가족, 의료진, 간병인 그 밖의 누구... 그중 한 명이라도 환자의 몸에 생기는 작은 변화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욕창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생긴다 한들 낮은 단계에서 발견 됐을 거다. 그래서 욕창은 무심함의 수치를 나타나는 병이다. 이미 생긴 욕창에 누구의 책임을 묻기에는 내 자신이 과거에 했던 행동들이 무거운 닻이 되어 죄의식 아래로 내려 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괜찮다는 귀찮음으로, 결국 무심한 내 태도와 자세가 생각나며 그 누구에게도 화살을 돌릴 수 없기에 오늘의 드레싱에 집중한다. 저마다의 사연, 저마다의 무관심, 저마다의 사랑에서 태어난 욕창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고 이제는 그 꽃이 시들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닦아내는 수밖에.



마음을 다 잡고 하나, 둘, 셋 그리고 출발. 오늘도 나만의 애정으로 그들의 속살을 채우는 여정을 떠난다



1단계: 피부 손상은 없으나 피부색이 꾸준하게 홍반을 띠는 상태.

2단계: 딱지는 없으나 물집을 형성할 수 있는 얕은 개방성 궤양이 나타나는 상태.

3단계: 근막 이전까지 피부의 전 층이 손상되거나 괴사 한 상태.

4단계: 뼈와 힘줄, 근육이 노출될 정도로 조직이 괴사 한 상태.

심부조식손상의심: 피부와 조직 전층이 손상된 상태.

미분류단계: 부유조직과 가피조직, 괴사 조직에 의해 가려져 있어 단계를 구분할 수 없는 욕창.

터널:상처로부터 연장되어 피하조직과 근육층을 통과하는 가느다란 홈.

잠식: 상처 가장자리 주변의 피부 아래로 조직이 파괴되어 나타나는 현상.

사강: 죽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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