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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대학입학작전 - 말년병장의 리얼 역주행기

23살. 2학년 3반. "조금 더디게 왔을 뿐, 도착은 제대로 했잖아"

by GOLDRAGON

https://suno.com/s/RnCsetjKGpYNOoOn

작사:GOLDRAGON 곡:SUNO


1999년 11월 24일. 이 얼마나 기다린 날이었던가.

무슨 날이냐고? 그렇다, 드디어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고 사회로 복귀한 날이다.

한마디로 전역, 말년병장의 졸업식!

밀레니엄 새천년을 코앞에 두고, 사회에서 맞이하는 그 찬란한 새해 카운트다운을 얼마나 간절히 꿈꿔왔던가. 아, 근데 지금 전역의 감격을 풀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오늘 문득 떠오른 건... 파란만장했던 나의 대학입시 이야기. 전역이랑 대학입시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금 이걸 안 쓰면 평생 묻혀버릴 것 같아서, 노트북을 펼쳐든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갔더라면 96학번이 되었을 터.

누나 둘을 둔 막내아들로, 나름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 시절 나는 집에서 믿고 있었던 '에이스'였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신촌의 3대 명문 중 E여대를 제외한 Y대나 S대엔 당연히 들어갈 줄 아셨던 것 같다. 실력도 물론 되는 줄 아셨거니와 또 다른 이유도 단순했다.
"집에서 가깝잖아." 진짜 농담이 아니라 그게 큰 이유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고3 때 공부를 못했다. 그럼 '공부 잘하는 축'에는 속했었다고? 어처구니없는 소리. 그냥 못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떤 수준인지 끝까지 모르셨던 듯하다.
수능 전날까지도 날 믿으셨다. 그 순수한 기대가 참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
결과는? 역시나 보기 좋게 낙방. 엄마가 날 바라보는 그 표정으로, 아버지의 실망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재수의 길로 갔다. 그런데 그때도 나는 철이 없었다.
아현동에 밀집한 재수 학원에 등록은 했지만, 학원 교실에 가방만 던져놓고 근처 재래시장에서 친구랑 낮술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불합리한 세상을 탓하며, "왜 우리는 이 모양일까?" 신세한탄이나 하고 개똥철학이나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엄마는 몰랐을까? 아니다, 다 아셨다. 그저 내가 정신 차리기만을 묵묵히 기다리셨던 것뿐이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이듬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그 시절 갑작스러운 IMF가 터지는 바람에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거렸다.

아버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약회사 퇴사 후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은 다섯 식구 건사하기 위해 얼마나 겁도 나고 절박하셨을는지... 집안 형편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였다.

"그래, 나라도 군대 가야지." 영장을 받은 그때의 감정은 충격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냥 무덤덤했다. 그저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정부차원에서 군입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엔 군대 드라마도 여러 작품이 제작되어 군대 신드롬마저 있다시피 유행했고, 주변의 친구들도 먼저 입대한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어쩌면 군대가 남자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낙엽이 지던 9월 말, 나는 입대했다.

천리행군 중 노래 '일발장전'

그렇게 멈추어 버린 것만 같았던 국방부의 시계는 변함없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나는 말년병장이 되어 있었다.
그저 느낌이었던 걸까. 사람 좀 된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제대하면 뭐 하지?" "뭐 해 먹고살지?"

"그래. 대학을 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님께 전화해 수능 교재와 문제집을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행정보급관님께 사정을 말하고, 일과시간에 내무실에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제대말 인지라 열외병력이기도 했거니와 예비 민간인 취급을 받던 시기인지라 가능했다. 군대가 사람 만든다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사회에선 집중력 30초였던 내가, 그곳에선 마치 몰입과 집중의 무엇인가 달라붙은 것만 같았다.


수능은 매년 11월, 그리고 내 전역일도 11월.
말년휴가 중, 군인 신분으로 수능을 보러 갔다. 그 후 결과는...

드라마틱한 반전? 그런 건 영화나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반전 따윈 없었다. 시험 결과는 초라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냥 좌절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절박함만큼은 최고조였다.

원서 접수하는 일에 모든 걸 걸었다. 결국 한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부모님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셨지만, 그곳만이 나를 불러준 곳이었다.
등록금을 내고, 드디어 나도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말 그대로 '죽자고' 공부했다. 이후 시야가 넓어지고 더 높은 곳으로의 목표와 뜻한 바가 생긴 나는 결국 서울의 명문? 인 'S대학'에 편입까지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처음으로 학업이라는 분야에서 '최선'이라는 걸 다해본 나름 해피엔딩인 여기까지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깨달았다. "공부는 자의로 해야, 재밌다."

돌아보면 참 멀리 돌아왔다. 좀 더 빨리 갔으면 좋았겠지만. 누군가 내게 왜 이리 힘들게 돌아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조금 더디게 왔을 뿐, 도착은 제대로 했잖아. 이게 내 팔자인 걸 어쩌겠어?"


나는 속물이었고, 지금도 좀 그렇다.

아직도 이 사회는 대학 간판을 중요시한다.
학연, 지연, 혈연... 그들만의 리그.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실력과 꿈, 기술이 있는 자가 성공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그런데 말이지.
어제도, 오늘도 나는 내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부 안 해? 서울에 있는 대학 안 갈 거야?"

참, 웃기지 않은가.
이런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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