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권태기? 흔히 들리는 ‘권태’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졌다. 대략적인 의미로 부부 사이에서 서로의 감정이 시들어졌을 때를 의미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오늘도 지식 검색을 활용해 본다.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그런데 이상하다. 힘들어서 지친 것도 아니고, 바빠서 지겨운 것도 아니다. 게으르고 싫증 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적당히 지나가고 있을 때, 묘하게 허전하고 의미 없어 보일 때 그때 슬그머니 찾아오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17년 장교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뒤, 아이 둘을 돌보며 취업을 준비하는 삶. 지방에서 근무 중인 아내를 대신해 삼시 세끼 챙기고, 등하교 시키고, 숙제 봐주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기 계발을 한다. 누가 보면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딘가 헛헛한 기분. 밥은 먹었는데 포만감 없는 날처럼 말이다. 딱 요즘이 그렇다. 너무 더운 폭염의 날씨에 입맛도 없다.
이게 바로 권태다. 나는 모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많지 않다. 오늘도 루틴대로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은 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비워져 있다. 권태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별일 없네…” 하는 순간 그 순간에 스며든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권태를 쓸모없는 감정이라고 몰아내기 보다, 변화가 필요한 타이밍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권태를 만나면 모니터 앞으로 앉힌다. 그리고 말한다. “자, 네가 싫어하는 새로운 시도 한 번 해볼까?” 내가 던진 황당한 질문에도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에세이를 한 번 써보기도 하고 못 보던 책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며 내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해 본다.
권태는 없애는 것이 아니다. 활용해야 한다. 내면의 권태가 자꾸 속삭인다. “네가 하는 모든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냐?” 나는 웃으며 말한다. “의미는 내가 만드는 거야. 넌 그냥 구경이나 하고 있어.”
오늘도 나는 권태를 조용히 옆에 앉혀두고 내 삶의 조미료 한 꼬집을 더한다. 짜지도, 맵지도 않지만 그 속에서 나는 성장의 맛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