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스레 꼬여진 관계에 서 버렸다. 마음이 요동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낯선 전화를 받았다.
유난히 지친 날.
피곤과 함께 과중한 스트레스가 합쳐져 들고 있는 가방이 역기처럼 느껴진 날.
하필이면 그날 그 전화를 받았다.
"유지원 씨 되시죠? 전 한지은이라고 합니다...
페북에 메시지를 보낸 지 오래전인데 연락이 없으셔서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됐네요...
아 번호는 우진 씨를 통해서 얻은 건 아니에요. "
전화번호의 경로를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예상의 길목을 차단한다.
"어떻게 번호를 아시고 전화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발견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응답을 바로 해야 하는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담담한 듯 대답했지만 사실 너무 놀랐다. 우진 씨의 차 안에서 들었던 나지막한 그 음성.
흔하지 않은 목소리의 톤과 한 음절씩 미세하게 떨리는 특유의 개성은 그 여자가 분명했다.
내게 향하는 문장들이 즉흥적이지 않다는 걸 제대로 전달한다.
쉽지 않을 대화를 짐작했다.
"실례가 되는 줄 알아요.. 하지만 저희 둘은 한 번쯤 만나는 것이 어떤가 해서요.
제가 유지원 씨 편한 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내일쯤 어떠세요?"
무례하고도 성급한 제안이다.
순간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반드시 난 너를 만나고 말 거야'라고 밀어붙이는 힘이 강렬하다.
"제 일정 상 당장 내일은 불가합니다. 어느 날이 괜찮은지에 대해선 살펴봐야겠습니다.
그전에, 제가 한지은 씨를 만나야 하는지부터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습니다."
단호함을 장착해
해야 할 말을 이어갔다.
나름대로 침착하게 대화를 끌고 갔다고 순간의 안도가 있었지만
그 여자는 역시 쉽지 않은 상대다.
"불편하실 것 알아요. 하지만 꼭 만나서 나눌 얘기가 있어요. 부담스럽지 않을 겁니다.
내일이 안되시면 이번 주 주말이 어떨까요? 기다리겠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토록 불편했던 통화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그녀의 용감함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떻게든 빨리 끊어버리고만 싶어서 내가 어떤 대답으로 마무리했는지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
통화 종료 버튼을 힘껏 눌렀다. 어서 이 불쾌한 감정을 그만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와인바에 들러 좋아하지 않는 하우스 와인을 한 잔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머리를 비워보려 노력했다.
이번 주 주말이라...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삼일 남짓 남았다.
어차피 내 번호까지 알아내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그 여자를 막아설 재간은 없다.
여러 종류의 궁금함이 얇은 종잇장처럼 켜켜이 쌓여 간다.
이렇게까지 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단순히 우진 씨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이 되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피하지 말자.
그리고 우진 씨는 모르게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