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집념 05화

관조

by 로지

앞만 보며 집으로 향했던 나의 발걸음은 누구에게 쫓기는 속도였고 일그러졌을 나의 표정은

어딘가에 비춰 보이지 않아도 자명했다.

마치 그 여자와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우진 씨는 같은 시간에 전화를 했다.

그 여자에게 먼저 그다음은 나에게.

우리가 함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지 여러 차례의 다급한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발이 붓도록 숨이 차도록 걸어 들어온 현관문 앞에서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 여자와 만나서인지 동시간에 울린 우진 씨의 연락 때문인지 무엇으로부터 기분이 엉망인 건지

알도리가 없다. 그 여자와의 만남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보단

후련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의문이 풀리고 어떤 오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을 거다.

이토록 무지하고 무모하다.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선.

어째서 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오후 동안 나를 둘러싼 모든 걸 씻어내기 위해 샤워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맥주 한 캔을 자리에 서서 단숨에 마셔버린 후 한 차례 숨을 크게 내뱉고 우진 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기다렸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참는 듯한 어조로 목을 가다듬어 강조하듯 말한다.

"어디야? 전화 너무 많이 했어. 도대체 왜 그러니...

연락이 안 되니까 이상한 생각도 들어."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지쳤지만 이미 내 발로 들어선 순간 시작점이 돼버렸다.

"한지은 씨를 만났어. 내 일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왜 그러는 거냐고. 내가 알아서 정리할 텐데. 뭐라는데?

이상한 소리를 했을 테니까 그대로 믿지 마. 무슨 말을 했든 간에. 지금 제정신도 아니고 예민해."


"제정신이 아니 다라.... 글쎄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어.

우진 씨는 계속 그 여자와 연락을 하는 것 같던데 내가 아까 그 여자와 만나는 것도 알고 있었고. "

따지듯 대답하며 흥분했다.


"오늘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왔어. 너에게 접근할 것 같은 건 내 느낌이었고 정확하게 알 순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 여자와 만나지 마."

한숨을 쉬며 우진 씨는 평범한 듯 말한다.


우진 씨가 내게 던졌던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 여자와 만나지 마"는 내가 우진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여자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기대한 것은커녕 알 수 없는 초라함과 나약함이 나를 삼켜버렸다.

자존심이 센 나와 그런 것 따윈 없어 보이는 그 여자와 만남이란 걷잡을 수 없는 서막을 연 듯하다.


그리고 그저 답답하게도 우진 씨가 보고 싶다.

너무나 간절히.


집 앞까지 금방 도착 한 우진 씨도 보자마자 날 안아준다.

안도의 한숨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주말 아침. 작정한 늦잠에 실패한 채 피곤이 쌓인 만큼 밝은 햇살에 오히려 머릿속이 맑다.

누워있는 것보단 어디로든 나가서 햇살을 듬뿍 그대로 받고 싶다.

아직 이른 시간 적막을 깨는 전화음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한지은입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어요...

우리 만남에 관해서는 우진 씨에게 아무 말씀 안 하신 거 맞죠?"


또 확인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제가 한지은 씨를 만나려고 했던 건 저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아서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느 시점에 우진 씨와 만나기 시작했는지, 또 한지은 씨가 있는데도 제가 우진 씨와 만난 건지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건 말씀드렸다시피 파악이 되셨는 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제게 연락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하시죠."

다소 사무적인 말투와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

원하는 질문엔 대답할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의 시작이 저에게는 중요했어요. 유지원 씨는 우진 씨를 만나기만 하면 됐겠지만,

우진 씨와 저와의 끝은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거예요. 세상엔 일방적인 이별도 있겠지만 우진 씨는 저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저를 믿지 못하겠다면 제대로 우진 씨와 대화해 보시죠.

그러면 지원 씨가 저를 먼저 찾고 싶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제 우진 씨가 지원 씨를 만나러 갔죠? 그전에 먼저 저를 만났다고는 하지 않던가요? 아마 그랬겠죠.

우진 씨를 믿고 싶겠지만 진실은 저에게 듣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주말에 쉬시는데 방해를 했네요...

어서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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