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은 그 여자가...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냈어. 꽤 긴"
주연이의 표정이 굳어진다.
"오래 연애했다던 그 여자야. 그런데 우진 씨와 통화도 자주 하는 것 같고, 나한테도 할 말이 있나 봐"
심각해 보이는 내 말투에 흥분해야 하는지 더 들어야 하는지 잠시잠깐 고민하는 주연이는 짜증이 섞인 화를 삼키는 모습이다.
"보자. 뭐라는지 핸드폰 줘봐"
우진 씨의 전 연애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몇 차례 꼬집었던 부분이다.
친구로서 하나하나 단점이 될 만한 부분을 염려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일쯤은 어쩌면 예상했다는 얼굴이다.
"너를 만나려고 그 여자를 정리했으니까 우리가 모르는 남겨진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
각오가 되었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전해 받으면서 내뱉듯 읊조린다.
천천히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쉰다.
내가 느끼던 감정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당연히 만나면 안 되지. 특히 이 부분. 본인이 필요하다잖아. 왜 네가 상대해 줘야 하는데?"
나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궁금한 건 본능적인가 보다.
우진 씨의 차 안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녀의 얼룩진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더 듣고 싶고 또 그 여자가 궁금하다.
그럴 줄 알았지만 심각해진 표정으로 내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가는 주연이와 헤어진 후
다시 혼자만의 고립이다.
정답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결론.
난 그 여자를 절대 만나선 안된다.
여전히 우진 씨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사실 따져 묻고 싶고 오히려 내가 궁금한 거 투성이다.
급작스러운 관계의 변화가 무섭게 내려앉는다.
결국 집 앞으로 찾아와 기다리는 그를 더 이상 피하기가 어려웠다.
싸늘한 표정이 장착된 채로 차 안에서의 대화가 시작됐지만 5분도 되지 않은 채
다시 당황스러운 나의 감정이 일렁인다.
"미안해. 신경 쓰이게 해서. 그런데 내가 말한 게 전부야. 이렇게 화 낼 일이 아니야.
걱정되게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아...!"
사과와 변명이라기엔 억울함이 가득하다.
나를 위해 사랑했던 약혼녀를 버리고 그녀에게 시달리는 걸 감내하고 있는 중이라 힘들고 지쳐
성토하듯 나의 이해를 구걸한다.
조용히 손에 힘이 들어가 꽉 잡고 있던 핸드폰을 열어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줬다.
당황한 듯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이내 입술에 힘이 들어간다.
기어이 사고를 친 그 여자에 대한 분노가 그를 압도하듯 보인다.
"이럴 줄 몰랐어. 내가 해결할게. 상대하지 마"
무언가를 결심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내 일이 되었다는 걸.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려서 이제 수습 아닌 수습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걸.
대면해서 그녀가 쏟아내고 싶은 내용을 더 들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하고 싶어졌다.
"그 여자에게 연락하지 마. 내가 할 거야. 이미 3개월째 무시해 버린 상태가 되었으니 그냥 내버려 둬."
발음이 정확하게 내리 꽂히듯 그에게 던져버린 문장을 뒤로한 채 차에서 내렸다.
단호함과 냉정함이 생겨버린 나는 우진 씨 입에서 더 이상의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생성된 이 후줄근한 삼각관계.
사랑하는 상대와 다른 누군가의 과거사로 실랑이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참 난해하고 어렵다. 사랑은 그런 것. 영화, 드라마, 책 속의 여러 문장들이 가르쳐주었듯이.
그렇지만 이런 복잡해진 감정선을 경험하고 싶진 않다.
나와 상관없는 그 둘만의 서사를 모른 체하면서 시작한 연애의 쓴맛이라기엔 너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