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애플뮤직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새벽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창밖은 아직 어둡다. 도시가 잠들어 있다. 키르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간다.
2009년 3월의 나. 2022년 봄의 나. 그리고 지금, 2025년의 나.
세 사람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중심에 아인드라 프라부의 키르탄이 있다.
귀를 통과한 리듬은 몸을 통과했고, 몸을 통과한 리듬은 삶이 되었다.
채식하는 식탁 위에 그 리듬이 있다. 달리는 강변에 그 리듬이 있다. 글 쓰는 손끝에 그 리듬이 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기록을 경신하는 러너가 아니다. 나는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 리듬 안에서 산다. 멈추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브린다반에서 돌아온 뒤 16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걸었다. 병가를 냈던 시간도 있었고, 달리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고,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키르탄의 리듬이었다. 반복. 지속. 그리고 수용.
"All things must pass."
조지 해리슨이 노래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아인드라 프라부도 지나갔다. 브린다반의 그 일주일도 지나갔다. 아팠던 시간도, 좌절도, 실패의 기억도 지나갔다.
하지만 남은 것이 있다. 그 소리. 그 진동. 그 리듬.
나는 거기에 있었다.
2009년 3월, 브린다반 ISKCON 크리슈나 발라람 만디르. 촛불과 향연기 사이. 흰 쿠르타를 입고 자파말라 백을 목에 건 채. 아인드라 프라부의 키르탄 속에.
영상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영상이 없어도 나는 안다. 내 몸이 기억한다. 그 하모늄 소리를. 그 진동을. 그 밤의 온도를.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진동 안에 있다.
브린다반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찬가는, 지금 여기, 새벽의 책상 위에서도 울리고 있다. 그 기억은 내가 왜 지금도 쓰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기원이다.
하레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그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