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 아세요?
암에 걸린 순간,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지워졌다.
병명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언어가 되었고,
사람들은 암이라는 단어로 날 기억했다.
그곳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퇴사를 위해 출근하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록 내 몸속에 암덩이를 품고 있었지만, 일하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안쓰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회사에 도착해 팀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이미 사정을 알고 있던 친한 동료는 꼭 나으라고 응원을 건넸다. 그리고 드디어, 퇴사를 위해 높은 직급을 달고 있는 두 분과 각각 면담을 했다.
물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셋 중에 두 명이었다.
얼마나 싫어했냐고?
나는 매일 이렇게 빌었다.
'제발 저 사람들이 계단에서 비둘기 똥 맞고 굴러서 코 깨지게 해 주세요.'
제일 먼저 부사장을 만나러 갔다. 항상 이곳을 지날 때면 책상에 발을 올리고 팔자 좋게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였던 인간이었다. 그래도 사회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면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은 항상 위선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그랬다. 지금 내 몸이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역겨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도 똑같이 웃었다. 부사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내가 아는 사람도 같은 3기였는데, 지금도 펄펄해. 그 정도면 금방 낫지."
진심 어린 동료의 말에 비하면 그의 말은 형식적이었다. 그걸 위로랍시고 내뱉는 건가. 안 그래도 꼬여 있던 시선 탓에 좋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어차피 저 사람에겐 남의 인생일 뿐이었다. 그래서 저토록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부사장실을 나와서 바로 대표의 방으로 향했다. 협상 능력 하나는 인정할 만했지만, 그 외에는 부사장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바지사장 같은 인상이었다. 대표 역시 비슷한 위로를 건넸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남이 던지는 위로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진심 없는 말까지 일일이 기억하기는 힘들다.
대표는 내가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기보다는 계속 남아있기를 원했다.
"퇴사 말고 1년 동안 휴직하는 건 어때? 그래도 회사에 있으면 지원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웃으며 답했다.
"이 참에 오래 쉬려고요. 치료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결국 대표는 마지못해 내 퇴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다음 나온 말에 나는 참을 수 없이 웃어버렸다.
"치료 다 받고, 다시 오면 받아줄게."
... 가겠냐고.
뭐, 그만큼 나를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연봉도 꽤 올려줬으니까. 그들로 인해 기분 좋았던 일을 꼽자면... 연봉 협상 날이 유일한 기억이다.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책상 위를 정리했다. 조직검사를 마친 뒤부터 천천히 퇴사 준비를 해왔던 터라, 이날 가져갈 짐은 많지 않았다. 퇴사하는 날은 일찍 보내주는 관례가 있었기에 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와 입사일이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동기, 들어온 지 1년도 채 안 된 신입과 함께 회사 근처 카페로 향했다. 작별 인사가 목적이었지만, 실은 나의 퇴사를 빌미로 그들에게 농땡이 필 시간을 선물한 셈이었다. 일종의 전우애랄까.
한 시간 정도를 회사 욕만 하다가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 싶어서 이만 인사하고 헤어졌다. 여름의 이른 오후. 강하게 내려쬐는 햇살이 이렇게 따스할 줄은 몰랐다.
내 소식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동안 연락을 끊었던 친척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에 나 또한 연락을 끊고 지낸 태도가 미안해질 뻔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 무색하게, 친척의 지나치게 진심인 태도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너를 위해서 맨날 기도해. 너도 교회 다녀봐.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빌어."
처음엔 유연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친척의 태도는 완강했다. 종교 자체에 딱히 편견은 없지만, 아픈 사람한테 무슨 짓이지 싶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이제 힘들다는 핑계로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뒤에야 억지로 눌러놨던 한숨이 길게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투병으로 힘든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진짜로 걱정하는 건지, 종교 권유인지 모를 친척의 행동. 그가 나에게 한 짓은 걱정을 가장한 연민이다.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뜻이다.
다니던 피부관리숍에도 연락을 넣었다. 앞으로는 치료 때문에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사장님은 걱정하는 '척'했다. 하지만 말 끝에 어색하게 섞여 나오는 얄팍한 의무감은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요즘은 다들 금방 낫던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 말엔 싸늘한 거리감이 엷게 배어 있었다.
'정말 아픈 걸까?'
'혹시 다른 이유로 핑계를 댄 건 아닐까?'
그는 의심을 숨기지 못한 채 걱정 섞인 말만 대충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 그곳에서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그의 친절함도, 그동안 보였던 인간적인 태도도, 사회 초년생이던 내 여린 마음과 정을 이용한 단순한 고객 유치 수단에 불과했다. 그 사람에게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쓸모없는 고객에 불과했다. 예전에 그 사람이 뭐라고 했더라. "숍을 끊어도 계속 연락하는 고객들이 있다"라고? 순간 그 말을 믿었던 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도 사치다.
나는 담담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내 소식을 전한 건 단순한 사실이었다. 나는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과도한 감정도 기대한 적 없다. 죽을까 겁내지도, 눈물에 잠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잣대를 가지고 나를 재단했다. 내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멋대로 단정했다. 불쌍하다며 나를 이야깃거리로 삼고, 연민의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곁을 떠났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이미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었다.
그래도... 모두가 나를 위선으로 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일을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한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아팠던 자기 딸처럼, 누군가는 암을 앓았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나를 걱정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직접 겪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환자를 먼 타인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끼고 바라보았다는 것. 그들은 소중한 이의 고통을, 상처의 깊이를, 혹은 상상할 수 있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나에게 어떻게 닿을지를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건네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나온 말은 위로나 의무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겪었던, 혹은 마음으로 함께 겪으려 한 이들의 상처에서 우러나온, 묵직한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심스러운 온기 덕분에―
나는 세상이 전부 차갑지만은 않다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