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1) 발병의 시작

by 김 고운

그해 10월은 유독 공휴일이 많은 날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많이 바빴다. 으레 그렇듯 휴일이 많은 달은 약속도 많은 법이니까.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빠도 나도 약속을 나갔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가족은 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아빠와 동생이 제일 심했는데 정말 극성일 때는 눈에도 알레르기처럼 올라와서 꽤 힘들어했다. 엄마는 이번 간절기에도 어김없이 비염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빠가 집으로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아빠는 오랜만에 잡힌 친구들과의 약속을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퇴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후다닥 약속 장소로 향했었다. 아빠보다 집에 일찍 온 나는 아빠를 걱정하는 엄마의 한탄 아닌 한탄을 들으며 옷 정리를 했더랬다. 그때가 대략 밤 11시경이었다. 느닷없이 엄마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빠였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집에 일찍 가려고, 비염이 눈에도 올라온 것 같은데 약을 먹어도 불편하네”

당연히 아빠는 엄마에게 한소리 들어야 했다.

내가 봐도 들을만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눈은 토끼가 친구 하자고 올 것 같이 새빨갛게 되어서는 춥다며 몸을 덜덜 떨었다. 아빠에게 다시 잔소리를 하려고 기다리던 엄마와 나는 아빠의 상태에 말문이 막혀서 빨리 침대에 눕혀 재웠다.

오한이 든다던 아빠는 그렇게 밤새 열이 올라 고생을 했다. 약을 먹어도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가족 모두가 출근을 해야 했기에 아빠의 상태만 보고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빠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던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에 전화를 하니 아빠가 중요한 일이 있어 출근을 했다고 했다.

“여기 사람들이 다 나보고 괜찮냐고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다?”

당연한 거 아닌가?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정말 위독하다는 건데 그 일이라는 것이 건강보다 중요한가. 속이 상했다.

와중에 약이 잘 안 듣는 것 같다며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다시 약을 지어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목감기약을 추가해서.

그냥 잘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집에 가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머릿속에 일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날 하루 일을 국수 말아먹듯 호로록 말아먹었었다.


이게 아빠 때문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분명히 아침에는 없었던 붉은 반점들이 몸 곳곳에 생겨났다. 눈과 열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목도 너무 아파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숨 쉴 때마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심해지는 아빠의 상태에 우리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엄마는 아빠에게 주기 위해 죽과 포카리스웨트를 사 왔다. 죽에 있는 작은 쌀알들이 목에 걸려 삼키지 못하겠다 말하며 먹기를 거부하는 아빠를 겨우 달래며 포카리스웨트와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약을 먹였다.


약이 잘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색하게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이제는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단순 감기라던지 몸에 올라오는 반점들이 열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상했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았지만 당시에는 홍역이라던지 수두라던지 그런 감염병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다.

또다시 돌아온 휴일로 인해 동네 병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아빠의 상태를 보여줄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손을 놓고 있자니 무서울 정도로 변해가는 아빠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응급실에 가기를 원했지만 아빠는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건 고집이다.)


당시 의료파업이 절정이 치달아 응급실에서도 환자를 받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뉴스를 도배하던 때였다.

아빠도 그 생각을 했는지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오늘까지 약을 먹고 내일 병원에 가겠다고 말을 했다. 엄마와 내가 판단하기에 휴일이 지나고 가면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아빠는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고집을 피우는 아빠가 미웠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휴일이 원망스러웠다.

죽을 곱게 갈아 미음처럼 먹여보려고 했지만 넘기지 못했고 당연히 약도 먹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증상에 호전이 없으면 정부 지정 병원에라도 가자고 아빠에게 사정을 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서울에 정부에서 지정한 365일 여는 병원이 있다. 밤 12시까지 열어서 나도 종종 애용했던 병원.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아빠는 몸이 너무 아픈지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하자고 했는데 돼 자꾸 다른 병원에 또 가자고 그래!”라며 큰 소리를 냈지만 나중에는 버티기가 힘들었는지 병원 문이 닫기 전에 가자고 말을 했다. 그때도 아빠의 몸과 얼굴은 발진으로 인해 부풀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 선생님이 아빠의 상태를 보고 많이 놀라셨다고 했다. 수액과 항생제 그리고 해열제를 놔줄 테니 내일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이 상태라면 응급실에서도 받아줄 거라고. 집에 돌아온 아빠는 이제 물도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입안 너무 아프다고 해 얼음을 넣어주었는데 물을 삼키지 못해 입 주변으로 물이 줄줄 샜다.

기침이 심해지면서 가래가 너무 많이 나왔다. 검정 비닐봉지를 주어도 봉지를 순식간에 다 써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엄마가 아픈 아빠와 함께 밤을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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