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의 바람결〉

떠난 것들이 남기는 다정한 흔적

by 숨결biroso나

<떠난 것들이 남기는 다정한 흔적>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라고 합니다.
고온에서 저온으로, 밀집된 곳에서 텅 빈 곳으로
조용히 흘러가며 세상의 균형을 맞춥니다.

기억도 그렇습니다.
뜨거웠던 감정이 식고 나면,
그 자리에 남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른 무언가가 천천히 흘러듭니다.

어느 날 문득, 낯익은 냄새 하나가,
기억의 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오래된 편지지 냄새, 마른 먼지,
그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 같은 공기.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잠시 접어둔 페이지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공기는 형태를 바꿉니다.
기억도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모양을 바꿉니다.
처음엔 아팠던 순간이
나중엔 그리움이 되고,
결국엔 다정함으로 남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의 온도를 바꿔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차갑던 마음이 천천히 따뜻해지듯,
시간이 그 일을 대신해줍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창문을 흔들고, 나뭇잎을 스칩니다.
기억도 그렇습니다.
형체는 없지만,
지나갈 때마다 우리를 살짝 건드리고 갑니다.

그 바람이 불 때면,
조용히 멈춰서 그것을 맞습니다.
지나간 사람, 사라진 계절,
그리고 예전의 나까지도 함께 불어옵니다.
그 바람 안에는 여전히 온기가 있습니다.

아픈 기억이 다정한 바람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지나간 것들과 화해합니다.
잊는 게 아니라, 다른 결로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람은,
우리의 시간을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기억은 때때로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오래 묵혀둔 마음의 결을 다시 만집니다.
차갑게 남아 있던 감정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녹아
우리의 오늘을 덜 아프게 하고,
내일을 더 단단하게 합니다.

기억이 바람처럼 스쳐가는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건너왔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온도를 바꿔 흐를 뿐입니다.
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됩니다.





by 《그 자리에 핀 마음》 ⓒbiroso나.



#기억 #바람의결 #감정의온도 #화해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