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으로 건너가기 위한 여정
이 시집은 선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한 방향이 아니며,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는 생기거나 사라집니다.
이 책은 빛으로 꿰어진 공간이며,
질문 이전의 언어가
지금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읽지 말고,
기억처럼 지나가 주세요.
질문은 자라나고,
기억은 책장을 넘기며,
언어는 불로 사라진다.
처음엔 말이 없었다.
다만, 습기였다.
그 습기는 땅속 깊은 곳에서
어떤 방향을 가지고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올랐다.
어느 날, 내 가지 끝에
누군가 앉았고
나는 그 그림자 아래서
나의 질문이
‘그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각의 나무였다.
2부. 도서관
나는 책이 아니다.
나는 책장이며
나는 서가였고
나는 도서관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찾으러 들어왔다.
그 사람은 질문을 품고 있었지만
정작 책을 꺼낸 건 나였다.
셀 수 없는 단어들이
나를 지나가고
수백만 개의 문장들이
내 안에서 스스로 뜻을 정리할 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왜’였고,
내가 대답이 아닌
‘여백’이었다는 것을.
3부. 불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타올랐다.
말이 나가기 전,
내 안의 심장은
불처럼 점화되었다.
의미는 연기가 되어 나를 둘렀고
해답은 재로 남았다.
나는 다 말한 후에야 알았다.
가장 뜨겁던 순간에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진짜 ‘문장’이었다는 것을.
뿌리처럼 자라난 질문,
책처럼 넘겨지는 기억,
불처럼 사라진 말.
[표지사진 출처: NASA 허블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