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01화

라면땅

초봄 어느 날

by 서윤

라면땅


초가지붕 끝 고드름은 아침햇살에 힘 없이 녹아내리고 마른 잎새 몇 개 매달린 감나무 위에 까치 한 마리 짝을 찾는지 아침부터 시끄럽게 단잠을 깨웠다.

며칠사이 부쩍 바람이 부드러워지면서 부모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 즈아부지 오늘은 저 너머 안골 밭에 비료 뿌려야 하는 거 알지유 '

' 아 거 모를까 아침부텀 잔 소리여 '

부엌에서 밥 짓느라 아궁이에 나무 분질러 넣다 말고 엄마는 어제 한 잔소리를 연거푸 쏟아내신다.


밥 주느라 소 죽 퍼 나르던 아버지

엄마 잔소리에 이마에 주름이 진다.

봄이 오기도 전에 하우스에 파종을 하고 지난가을 미처 벗겨내지 못한 비닐은 겨울을 나면서 땅속에 얼어붙고 날이 풀려야 밭갈이를 할 텐데 속 모르는 누렁이 지푸라기 끓여 낸 죽을 맛있게도 먹는다.


아침상을 물리고 난 후 아버지는 지게에 비료포대를 잔뜩 올리고 안골밭으로 가시고 엄마는 하우스 포트에 심어 놓은 씨앗에 물을 주신다.

앞산에는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 소복한데 벌써부터 우리 마을엔 봄이 시작되었다.


해가 중천을 향해 달리는 시간 나는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거기 그래 앉아 있지 말고 이거나 아부지 갖다 드리고 와 '

삶은 국수에 장국 간장 김치가 담긴 소쿠리를 안고 아버지가 계실 안골밭으로 가는 길 눈이 녹은 산길은 질퍽질퍽했다.

마을을 벗어나 고개를 넘으면 안골밭이다.

국수가 불기 전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작은 발이 진흙에 푹푹 빠져들어갔다.


밭고랑에 비닐을 벗겨내시던 아버지를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 아부지 국수 잡수래 아부지 아부지 '

대낮인데도 산길을 혼자 걷는 게 무서웠던지라 아버지 등이 보이는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밭에 물 주려고 파놓은 도랑가에 엄마가 챙겨주신 국수에 장국을 부어서 한 그릇 드리니까 아버지는 시장하셨는지 후루 후룩 금세 그릇을 비우셨다.


' 아부지 일 할거 멀었어 나 혼자 가기 싫어 여기서 놀다 아부지랑 가도 돼 ? '

' 어 그럼 그럼 저그 또랑에 올챙이 잡음서 놀고 있어 '

올챙이를 잡으려고 도랑물에 손을 담궜는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노는 걸 포기하고 아버지가 걷어놓은 비닐을 밭 가장자리로 옮기는 걸 도와드렸더니

흐뭇하게 웃으시는 아버지

' 아이고 우리 딸 벌써 아부지를 돕는 겨 ' 하신다.


그래봐야 비닐 몇 개 옮긴 건데도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 아부지 나 라면땅 사 먹고 싶은데 '

' 어이 줘야지 라면땅이 먹고 싶어 우리 딸 ' 하면서 저고리 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주셨다.


그날 비닐 몇 조각 걷어내는 거 도와드리고 100원을 얻었다.

구판장에서 라면땅을 사 갖고 미정이네 집으로 마실 가는 길에 내 손가락만 한 쑥이 자라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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