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장날
낭떠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것도 같고 호랑이한테 쫓기는 꿈을 꾼 것도 같고 꿈에 놀라 잠에서 깨어 무서운 꿈 꾸었다 하니 아버지 말씀이 ' 크느라 그려 ' 하셨다.
키 크는데 왜 무서운 꿈을 꿀까
졸린 눈 비비면서 봉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두루마기에 중절모자를 쓰고 외출 준비를 하신다.
' 아부지 어디가 ? '
' 오늘이 장날이여 부지런히 댕기 올 테니 놀고 있어 맛난 거 사다 줄게 '
' 응 알았어 빨리 와 아부지 '
아버지가 장에 가시고 괜히 허전해서 대문 앞에 앉아 있는데 우물집 수염할아버지가 지나가신다.
' 아즘니 기침하셨어 '
' 자네는 아침부터 어딜 가시는가 '
' 장에 가유 어르신은 밭에 가셨쥬 ? '
' 아녀유 울 아부지도 장에 가신다고 금방 나가셨어유 '
' 버스 놓칠까 댕기 올게유 '
' 어 그려 어여 가보시게 '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흉내 내면서 뒷짐 지고 서서 수염할아버지가 장에 가시는 걸 보고 동네사람들도 다 장에 가는 걸 보았다.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라 나이보다 촌수가 우선이었고, 우리 집은 마을에서 촌수가 높으니 애어른 할 것 없이 나는 애기씨도 되었다가 할무니도 되었다가 아줌니도 되었다. 7살에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한테 자네 자네 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었다.
하물며 친구들도 어른들 앞에선 나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장날이라고 마을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 지나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장에 가서 그런가 마을이 조용하다고 느껴졌다.
엄마는 감자밭에 풀 뽑으러 가시고
나는 혼자 심심해서 구슬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 구판장 쪽으로 내려갔는데 친구들이 벌써부터 구슬치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엊그제 구슬을 많이 잃어서 오늘은 꼭 따야지 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앙 물면서 구슬치기를 했다.
그날은 구슬을 구멍에 넣는 놀이가 아니라 멀리 있는 구슬을 맞춰서 따먹는 놀이였다.
고갯말 순오는 키가 커서 구슬을 계속 맞추는데 나는 그날도 계속 빗나가서 또 구슬을 많이 잃었다.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 순오한테 구슬을 다 잃는 꿈도 꾸었는데 계속하다가 다 잃을 것 같아서 ' 나 오늘은 그만할래 ' 했더니
' 너 이제 구슬 없어서 그런겨 ' 한다.
' 아녀 집에 구슬 많어 그냥 하기 싫은겨 '
' 맨날 집에 많대 우리 집에는 더 많어 '
순오가 자꾸 약을 올리는 게 화나고 장에 가신 아버지는 저녁에나 오실 거고 괜히 슬퍼졌다.
미정이네집에 가서 소꿉놀이나 해야지 하면서 걷는데 옥경이가 따라왔다.
' 너도 미정이네 가는겨 ? '
' 응 같이 가 '
옥경이랑 같이 미정이네 집으로 가는데 예숙이네 밭에 나생이 ( 냉이 )를 캐는 동네아줌마들이 또 ' 애기씨 어디 가셔 ' 한다.
' 미정이네 놀러 가유 ' 라고 대답했다.
' 미정이 아까 즈엄마하고 장에 가던디유 '
' 진짜유 진짜 미정이 장에 갔어유 ? '
' 야 아까 지가 똑 띠기 봤어유 '
옥경이랑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둘이 공기놀이를 하는데 엄마가 오셔서 옥경이는 집에 가고 엄마랑 둘이 점심을 먹었다.
' 엄마 미정이는 장에 갔대 '
' 장에는 뭐 하러 갔대 '
' 몰러 저 예숙이네 밭에 아즘니들이 나생이 ( 냉이 ) 캐믄서 봤댜 나도 담 장날에 데리고 가주면 안 돼 ? '
' 장에 가믄 뭐 햐 걸리적거리기만 허제 '
' 나 짜장면 먹어보고 싶어 '
' 담 장날에 아부지 따라가 그라믄 '
그날 미정이가 너무 부러워서 자꾸만 산 너머 장이 선다는 읍내 쪽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저녁이 다 되어서 오셨는데 깜빡하고 내 과자를 못 샀다고 미안하다 하셨다.
과자보다는 짜장면이 더 먹고 싶어서 다음 장날에 꼭 따라가기로 약속을 받았다.
그날밤에 또 무서운 꿈을 꿀까 봐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고, 밤새 장구경하고 짜장면 먹는 꿈을 꾸었다.